나는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늘 낮 12시쯤 나는 아내와 더불어 점심 식사를 하려고 첼튼햄 바닷가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오늘 당신 생신이라 그럴듯한 데서 점심 하려고 제가 식당 예약해 놓았어요,’ 라고 아침 식탁에서 아내가 말했었다. ‘아니 아침에 벌써 이렇게 맛있는 흰 쌀밥에 미역국을 먹었으면 됐지 무슨 또 점심 약속을…’하고 내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그냥 생신도 아니고 오늘은 칠순이시잖아요. 오늘같은 날은 둘이 한번 분위기 잡아보려고요. 또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것 좀 먹어보려고 그랬으니까 아무 말씀마시고 같이 나가세요,’라고 아내가 간청하듯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좋아하는 데라면 갑시다.’ 하고 나도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활짝 웃으면서 ‘당신 지난 번에 흰 윗도리에 까만 바지 그리고 까만 모자 쓰시니까 아주 좋던데 오늘도 그렇게 입으세요. 저도 흰 옷 입을래요,’하고 말했다. 나는 아내의 커다란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벌써 칠순이라니. 나는 정말 내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칠순 같은 건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그게 나와 상관이 있으리라고는 아직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딸들로부터 아빠 칠순에 무엇을 해드렸으면 좋겠냐고 전화가 왔었다고 아내가 내게 귀띰을 했다. ‘칠순은 무슨 칠순, 여보 나 아직 칠십 아니야. 애들한테 쓸데 없는 소리 말라고 그래요.’하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가 바뀌고 생일이 가까워왔지만 딸들한테도 더 이상의 칠순 이야기가 없기에 나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래 그때 단호하게 말하기를 잘했지 칠순은 요새 세상에 무슨 칠순 담에 팔십이나 되면 그때 조촐하게 잔치 한번 하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날씨가 무척 화창했다. 집을 나와 첼튼햄 바닷가를 향하여 차를 몰면서 아내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날씨 이야기도 하고 손주들 이야기도 하고 금년에는 어디로 여행을 할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약속된 레스토랑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이 꽉 차서 차를 댈 데가 없었다. 웬일이지 이 식당이 이렇게 잘되나 하며 차를 돌려서 나가려고 하는데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유씨 부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저분들이 여기 웬일이지? 식사하러 오나 하고 내가 중얼거리자 아내가 우리처럼 점심 먹으러 오겠지요 빨리 주차할 곳을 찾으세요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식당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같이 식당을 향해 걸었다.
당신 오늘 멋져요 하고 아내가 위아래로 나를 쳐다 보며 말했다. 멋지긴? 예쁜 건 역시 당신이지 하고 주고받으며 우리가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별안간 식당 한가운데로부터 폭죽이 터지고 사람들이 일어서면서 ‘생일 축하합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하고 왁자지껄하게 소리를 치면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 난 처음에 나를 향한 소리인 줄 몰랐다. 그러다가 일어서서 손을 흔드는 남녀들이 평소에 우리 부부와 가깝게 지내던 친구 선후배분들인 것을 알고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성장을 하고 나온 그분들은 머리에는 색종이로 접은 고깔 모자를 쓰고 입으로는 삘릴리 종이 피리를 불면서 어린애들처럼 환하게 웃으며 우리부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건 정말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서프라이즈 파티, 그래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 몰래 친구들이 파티를 준비해 놓고 불을 끄고 기다리고 있다가 집에 들어온 주인공이 무심코 불을 켜면 별안간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박수소리가 나면서 주인공을 축하해주는 서프라이즈 파티. 난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내 코 앞에서 그 서프라이즈 파티가 벌어졌고 나는 주인공이었다. 식당에 와있던 다른 손님들까지도 놀란 표정으로 그러나 함박 웃으면서 우리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그들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답하면서 사람들이 안내해주는 대로 한가운데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낯익은 얼굴들, 이웃의 무궁화 형님 내외, 멀리서 온 김장로 내외, 후배인 손목사 내외, 동생보다 가까이 지내는 회계사 내외, 변호사 내외, 산우이자 화요음악회 단골 회원이신 올레님 내외, 강산님 내외, 학교 후배인 다인네 내외, 그리고 아까 우리 앞서 들어오던 유씨 내외, 어떻게 그렇게 꼭 오셔야 할 분들이 전부 다 오셨는지 나는 꼭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들 아시고 이렇게 오셨어요? 하고 내가 묻자 무궁화 형수님이 내게 되물었다. 아니 정말 몰랐어요? 부인께서 한달 전부터 준비한 건데요 하고 말했다. 한달 전부터요? 전 전혀 몰랐어요 하고 내가 말하자 몇몇분들이 와 그럼 완전 성공이네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생신 아니 칠순 축하합니다 하고 입을 맞춰 외쳤다.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아내를 돌아보자 아내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상 밑으로 손을 뻗어 아내의 손을 잡았다.
자 선물받으세요 선생님 다시 축하드립니다 하고 다인이 엄마가 선물보따리를 갖고 나와 내 앞에 놓자 우리 선물도요 우리도요 하면서 모두가 차례로 나와서 우리 상 앞에다가 선물을 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제가 뭐라고 해야될지…하다가 나는 그만 목이 메이고 말았다. 자 이제 식사합시다. 배고프네요 하고 어느 분 하나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소리를 질렀고 나도 모두를 향해 그러시지요 우리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시지요 하고 말했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 모둔 즐겁게 정담을 주고 받았다. 무엇보다도 오늘 이 파티를 위해 아내가 비밀리에 모든 분들과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이분 저분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나는 아내의 용의주도함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도 서프라이즈 파티에 참석해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자기들도 담 번에 집안 식구들을 위해서 꼭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첼튼햄 바닷가 레스토랑의 창문 밖으로는 푸른 하늘 흰 구름 그리고 부드럽게 몰려왔다 몰려가는 하얀 파도가 이날 오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음식 아름다운 서프라이즈 칠순 파티는 그렇게 아름답게 열렸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내 옆을 지키는 사랑하는 아내였다.
칠순 잔치
누군가 말했는가
인간 칠십 고래희(人間 七十 古來稀)라고
시인(詩人)은 육십도 못 살고 죽었지만
나는 칠십을 살며 고래희가 되었네
오늘 알았네 세월은 결코 나를 비껴가지 않는다는 것을
참 오랜 세월 살았네
그 세월 속에 녹아있는 나의 삶
사랑 희망 동경 무엇보다 사람들
지나간 모든 것들은 풍경이 되었으나
오직 사람들만은 살아서 움직이네
잔치가 벌어졌네
날 위한 칠순 잔치
날 위해 기뻐해주는 사람들 그들 틈에 기뻐하는 나
칠순의 세월이 헛되지 않네
사람들 틈에서 비로소 칠순의 나를 찾네
내 이제 세월을 품고 살겠네
오는 세월 막지 않고
가는 세월 붙들지 않고
오가는 세월 함께 품고 살겠네
그 세월 속에 사람들과 더불어 웃고 울며 살겠네
인간 칠십 고래희답게.
2017년 2월 석운 김동찬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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