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끄러운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끄러움이 더 많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다 늙어서 부끄러울 게 뭐 있냐고 말하지만 나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어렸을 때는 철이 없어서 젊어서는 아직 경험이 없어서 라는 구실이 있기에 남들에게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용서받을 수 있는 여지가 그런대로 있었지만 나이든 뒤로는 그런 여지가 점점 없어져 간다고 느끼기에 그렇지 않나 스스로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느끼는 부끄러움이 점점 더 많아진다. 어쩌면 일종의 자괴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앞을 내다보기보다는 자꾸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기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아쉬운 느낌이 합해지며 결국은 부끄러움이 온몸을 감싼다.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나 그렇게만 했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하는 안타까운 마음. 이웃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 더 잘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이제껏 살아온 삶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크다.
어렸을 때 읽었던 어떤 책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정신 차려라. 워싱턴은 네 나이에 측량 기사였다,”라고 하자 아들이 그 말을 받아 아버지에게, “네, 알아요. 그리고 아빠 나이에는 대통령이었지요,” 라고 했다는 일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때때로 동년배의 주변 분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하면서 못마땅해 할 때에 항시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 일화가 있기에 나는 못 마땅한 젊은 사람들을 쳐다보기 보다는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곤 한다.
젊었을 때에 꼭 잡고 있었던 것들을 훌훌 놓아줄 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오히려 편안해질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남은 삶 동안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자꾸 줄어들거나 사라진다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이며 또한 아픔이다. 그렇기에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되고 기회가 주어졌었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던 그때에 왜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의 감정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며칠 전 오후 점심을 먹은 뒤 편안한 자세로 앉아 책을 읽다가 얼마 안 돼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만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이구, 이 사람아 책을 얼마나 읽었다고 벌써 졸아? 어떤 사람은 네 나이에 책을 읽는 정도가 아니고 왕성한 창작력으로 책을 쓰는데 너는 뭐 나이 좀 들었다고 책만 잡으면 졸아!’ 아무도 보는 사람도 탓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 데 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은 또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젊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이 나이에 이른 것이 또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나른해지려는 몸을 추스르고 흐릿해지려는 머리를 흔들어서라도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자고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약속해본다. 이제 나이 들어서 한 약속은 꼭 지키고 죽어서 죽은 뒤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말자고 마음의 손가락을 걸어본다.
그러나 가장 부끄러운 것은
아주 부끄러운 것은
하지도 못하고 가슴에 남아있는 말이다
나만 비워버리면 하지 못할 말이 없고
하기만 했더라면
나와 듣는 이의 삶이 바뀔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고백도 못하고 가슴에 남아있는 사랑이다
나만 내려놓으면 고백 못할 사랑이 없고
고백만 했더라면
나와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러나 가장 부끄러운 것은
지키지도 못하고 가슴에 남아있는 나와의 약속이다
정말로 나를 사랑했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이 없고
지키기만 했더라면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2017.7.2 석운 김동찬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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