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

수상(首相)에게서 온 편지

석운 2018. 7. 19. 20:23

며칠 전 아침이었다. 편지함을 열어보니 편지가 한 통 와있었다. 종이 편지가 그리 흔하지 않은 요즈음이라 또 무슨 광고 편지인가 하고 봉투를 열어보니 뜻밖에도 재씬다(Jacinda: 뉴질랜드 수상. 금년 38세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여자 정부 수반) 수상의 함빡 웃는 사진이 편지 오른쪽 위에 보였다. ‘아니 웬 수상 사진이,’하고 의아해하며 혹시 잘못 온 편지가 아닌가 하고 좀 더 들여다보니 나와 아내 이름이 편지 왼쪽 위 수신인 자리에 선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편지는 친애하는김 선생 내외분에게하는 인사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의 눈길은 곧장 굵은 글씨로 쓰인 큰 제목의 문장으로 옮겨갔다.


‘여러분께서 난방기구를 켤 때 두 번 생각하실 필요없이 키셔서 따뜻하게 지내시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여 나는 그 밑의 설명을 읽었다. 내용인즉 생활비가 계속해서 올라가는 때에 고정소득으로 사는 것이 힘든 것을 알기에 정부는 금년 7 1일부터 65세 이상의 모든 분들께 겨울 동안에 주당 $20.46씩 난방비를 보조하므로 춥지 않게 겨울을 지내시도록 하겠다는 안내문이었다. 금년은 7월부터 시작되지만 내년부터는 5 1일부터 더 빨리 보조금을 지불해 드리겠다는 말도 덧붙여 쓰여있었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틈엔가 나이가 들어 국가로부터 연금을 타는 것이 어떤 때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겨울 추운 날씨에 어르신들이 난방요금이 부담되어 따뜻하게 지내지 못할까 걱정되어 국가가 난방비를 보조해 드릴 터이니 두 번 생각하지 말고 난방기구를 켜라고 수상이 직접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새삼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졌다.

생활이 그런대로 넉넉한 분들에게야 난방비 보조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빠듯한 연금이나 고정 소득으로 사는 분들에게는 정부의 이번 조치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나라 겨울은 한국처럼 춥지는 않지만 비가 많이 오고 습해서 어떤 때는 오히려 한국의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그런 날씨에 집에 난로라도 마음 놓고 켜놓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기 요금 많이 나올까 두려워 난로로 손을 뻗치다가도 그만 손을 움츠리고 말아야 했던 분들에게는 오늘 받았을 수상의 편지가 상당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속이 절로 따뜻해졌다.

작년에 그녀가 수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처음에는 불혹(不惑)의 나이도 되지 않은 젊은 여자가 과연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부터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상이 된 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결코 나이와 정치 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의 그녀의 수상으로서의 정치적 역량은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번의 난방비 보조는 국민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린 따뜻한 애민(愛民)의 마음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국민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살며시 긁어줄 수 있는 마음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문득 그 옛날 자장(子長)과 공자(孔子)가 주고받았던 문답이 떠올랐다.

자장이 어찌해야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까 라고 묻자 공자께서 백성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이롭게 해주는 것이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답하셨다. (子張曰: "何謂惠而不費?" 子曰: "因民之所利而利之, 斯不亦惠而不費乎? – 논어의 요왈 편(論語·堯曰))

뉴질랜드의 젊은 여수상이 논어를 읽고 깨달음을 얻어 이런 조치를 했을까 하고 나는 혼자 빙긋 웃었다. 아니 중요한 것은 논어를 알고 모르고가 아닐 것이다. 논어를 백 번 읽어 줄줄 외운다 하더라도 마음 밭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바른 행동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리고 나이 든 분들을 자기 부모처럼 생각하는 공경심이 있기에 주변의 많은 염려를 물리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바라기는 정부가 이번 난방비 조치를 지혜롭게 활용하여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되 결코 국고가 낭비되는 일은 없도록 했으면 한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고 아침저녁 으슬으슬하도록 추운 이 겨울에 뜻밖에 날아든 수상의 편지가 구름 사이를 뚫고 다가온 따뜻한 햇살처럼 나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이 편지를 받아 든 다른 모든 이들도 편지가 전해주는 온기(溫氣)를 붙들고 이 겨울을 활기차게 이겨나가기 바라는 마음이다.

2018. 7.19 석운 김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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