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벗는 것이다. 관객 앞에 나서는 배우가 옷 벗기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글 쓰는 이는 읽는 이들을 위해 벗을 준비도 망가질 준비도 되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43년 전 써놓았던 일기장을 그대로 공개할 용기가 생겨났다. -
그때 나는 23살이었고 대학 졸업식을 한달 남짓 남겨두고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다녔던 그 학교를 나는 너무도 사랑했었고 그곳에서 보냈던 5년의 시간을 너무도 사랑했었기에 나는 학교를 떠나기가 너무 싫었다. 5년 전 대학에 들어왔을 때 나는 비로소 삶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흘러가는 하루 하루가 너무도 귀하고 아쉬워 2학년이 되면서 나는 과감히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연구실 속으로 칩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어 맬 수는 없었고 결국은 졸업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와있었다.
학교를 떠나기가 그렇게도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회로 나가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에 나가면 생활과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고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고 그 생활과 타협해야 된다는 생각이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학교에 끝까지 남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졸업을 해야 했고 싫던 좋던 사회로 나가야만 했다. 군대에도 가야 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지만 왜 그렇게도 그런 것들이 싫었는지 모르겠다.
1972년 1월 4일 그날의 일기에는 그때 대학 졸업을 한달 앞두고 있던 23살의 청년의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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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年1月4日
音樂이 흐르는 房의 한 구석에서
-등줄기에는 싸늘한 차가움이 무슨 벌레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親舊가 다녀간 뒤
-그의 엄숙한 表情이 아직도 뇌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웃집 老婆의 웃음 속에서
-나는 일그러진 삶의 姿勢를 되찾을 수 있었다-
詩라도 쓰고 싶다. 이렇게 분주해버린 生活의 한 모퉁이에 문득 처져 버렸을 때 理由없이 밀려오는 허전함은 무엇으로 때울 수 있을까? 落書처럼 헤설픈 끄적거림으로 시간을 메우고 있는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위해 정지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 가버린 것일까? 나의 詩心은? 그 값싸고 奢侈한 詩心마저도 지금 오히려 情겨웁게 느껴지는 이유는? 글을 쓰면 하나같이 유치해버리고 마는 지금 나는 惡을 쓰고 筆을 놀리고 있다. 써야 한다는 의식보다는 筆이 멈추어지는 그 순간이 두려웁게 느껴져 계속 손을 움직이고 있다.
生活이 눈을 부릅뜨고 내 目前에 버티고 서있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어찌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正面으로 그를 對할 수 없다. 自信이 없다. 우선은 피하고 싶다. 비록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歲月이 흐르기를, 빨리 지나가기를, 나는 고대한다. 그 동안 나는 연습을 해둬야겠다. 얼굴과 배와 손 가죽을 두텁게 하는 연습을. 그것에 어느 程度 자신이 생겼을 때 나는 先手를 쳐서 生活을 노려보겠다.
生活이여! 그대 나를 슬프게 하라. 나는 忿怒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 슬픔을 鈍化시키는 法을 배우겠다. 죽어도 나는 아니 지치리라. 아마도 그대 먼저 지치리라. 그때 나는 또 다른 生活과 승부를 벌리리라. 하니 生活이여 염려 말고 부딪쳐오라. 어서, 어서 빨리!
겨울 生命
겨울에, 이 불만한 季節에
生命은 이미 그 호흡을 始作했다.
나는 듣는다, 그것을
눈(雪) 쌓인 땅속 저 깊이
꿈틀거리는 작은 숨소리들을 그대는 못 듣는가?
生命이여, 단 하나 價値여!
灰色 하늘에 눈발이 흩날려도
추위가 빛(光)마저도 얼려 정지시켜도
나는 보고 있다, 그것을
불투명한 하늘빛 저 멀리
하늘거리는 가변 봄 모습들을 그대여 보이는가?
生命이여, 내 유일한 所望이여!
겨울에, 이 우울한 季節에
빛 바랜 하늘과 딱딱한 땅 사이에
나는 춤춘다, 영혼과 더불어
벌거벗은 숲 속의 저 옛터
비틀거리는 내 몸 춤의 율동을 그대여 생각하라!
生命이여, 아 나만의 生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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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월은 춥다. 그 추운 겨울 방구석에 처박혀서 다가오는 생활을 정시하지 못하고 허허로운 생각의 구렁 속에 빠져들어가다 결국은 몇 줄의 의미 없는 詩로 끝나버린 그때의 일기가 지금 읽어보아도 너무 안쓰럽기만 하다.
2015년 7월을 보내며 석운 김동찬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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