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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어느 날 저녁

석운 2017. 9. 7. 10:46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어느 날 저녁

아내는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정성껏 저녁 밥상을 차렸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흰 두부까지 예쁘게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여놓고 밥도 새로 지어서 제일 예쁜 밥공기에 담아놓았습니다. 남편이 돌아와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기대도 되고 역시 당신이 차려주는 밥이 제일 맛있어 하며 싱글벙글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 속으로부터 남편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행복한 마음이 더더욱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아까 오후에 전화 통화를 했었을 때도 7시까지는 들어올 거라고 했었는데 웬일인지 늦어집니다. 들어오면 곧장 따뜻한 찌개를 드리고 싶어 레인지에 몇 번 올리고 내리다 보니 자꾸만 맛있는 국물이 졸아들기에 속이 상합니다. 7시반이 넘자 슬며시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아니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를 하지 도무지 뭐 하는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한 번 찌개 냄비를 레인지에 올려놓습니다. 혹시라도 금방 뛰어들지도 모르는 남편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또 10분이 지나도 안 오자 이제는 화도 나고 또 한 편으로는 무슨 사고라도 났나 걱정도 되기 시작했습니다. 단란하고 사랑스런 저녁 한 때를 꿈꾸며 마련했던 저녁 밥상이 이제는 보기도 싫어졌습니다. 터져 오르는 울화통을 꾹꾹 눌러가며 또 마음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문 쪽만 바라보는 시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나워지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아내의 사랑스런 전화를 받았던 남편은 행여 늦을까 퇴근시간이 되자 마자 회사를 나왔습니다. 여보 맛있는 것 해놓고 기다릴게요 하던 아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근무시간 내내 귓가를 맴돌아 일도 손에 잘 안 잡혔었습니다. 집을 향해 차를 몰다가 문득 지난 번에 같이 들렸던 백화점이 눈에 들어오자 아내가 몇 번씩 만지다 놓았던 스카프 생각이 났습니다. 시간을 보니 오늘 일찍 나와서 그런지 아직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 후딱 들려서 사가지고 가자 하면서 남편은 차를 백화점 쪽으로 돌렸습니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벌써 제법 혼잡해지기 시작하는 백화점 입구였지만 다행히 지하 2층 주차장에 자리가 있어 차를 주차하고 뛰다시피 3층 여성 코너에 가서 스카프를 사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진열대에 놓여 있을 때엔 그냥 스카프에 불과했지만 곧 아내의 목에 걸쳐질 것이라 생각하니 그 스카프가 그렇게도 귀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스카프를 받고 환하게 웃으며 여보 사랑해요 라고 말할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며 싱글벙글 지하2층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누가 차 뒤를 가로막고 주차를 해놓았습니다. 어허 이런 시간 없는데 하면서도 당연히 핸드브레이크를 풀어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차를 밀어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런 하면서 다시 차의 앞쪽으로 가서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나 보았지만 전화번호도 없었습니다. 주변에 주차요원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다리는 일분 일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한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렇게 되면 깜짝 선물로 받을 스카프의 기쁨이 반감될 것 같아 안 하기로 했습니다. 이해할 거야. 그리고 이 스카프를 보면 오히려 아이구 그것 사시느라고 그렇게 고생하셨어요. 어서 저녁 드세요 .하며 더 기뻐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초초하게 차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30분이나 안절부절 기다린 끝에 차 주인이 나타났고 자기는 분명 핸드브레이크를 풀어놓은 줄 알았다고 변명을 하는 그와 다툴 시간도 없어 급히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차를 몰면서도 연신 옆에 놓인 스카프를 매만지면서 분명 기뻐할 아내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렸습니다. 너무 늦어서 많이 걱정하고 있을 터이니 아예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스카프부터 꺼내 흔들며 들어가자. 여보 이거 사오느라 좀 늦었어. 당신 이거 갖고 싶었지 하면 펄펄 뛰며 좋아할 아내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문 밖에서 차 소리가 나고 남편이 들어오는 인기척이 났지만 아내는 혼자 화를 내다 또 걱정을 하다 이제는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몇 번 레인지 위를 오르내렸던 찌개는 다 졸아붙었고 밥도 다 식어버렸습니다. 저녁이고 뭐고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달래며 앉아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10분만 일찍 왔어도 여보 웬일이세요 찌개 다 식었잖아요 하고 눈이나 한 번 흘기고 식탁으로 손을 잡아 끌었겠지만 지금은 심통만 났습니다. 남의 정성도 모르는 사람 하는 생각이 드니 밉상스러운 마음만 들었습니다. 똑바로 쳐다보기도 싫어 외면하고 옆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무언가를 손에 들고 휘두르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이었습니다. 여보 이거 당신 하고 남편이 말하는 순간 벌떡 일어난 아내는 남편 손에서 흐느적거리는 그 무언가를 홱 잡아채 집어 던지면서 늦게 오고도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싱글거려요 하고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집어 던진 스카프가 공교롭게도 찌개 위에 떨어져 흥건히 찌개 국물이 배었습니다.

홧김에 무심코 저지른 아내의 작은 행동이 남편의 모든 기대감을 뒤엎었습니다. 기대감이 컸었던 만큼 실망도 컸고 실망은 곧 서운함을 넘어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야 그걸 사오려고 얼마나 펄펄 뛰었는데 하고 달려가 더럽혀진 스카프를 집어 든 남편은 화가 날대로 나서 큰 소리로 야단을 쳤고 남편의 사과를 기대했던 아내의 입에서는 다시 더 큰 소리가 나왔습니다. 누가 그거 사오랬어요 밥상 차려놓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결국 아내의 입에선 울음이 터져 나왔고 더욱 더 속이 상한 남편은 밥상을 발길로 걷어차고 집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집에 남은 아내는 울면서 엎어진 밥상을 치우다 다 쏟아진 찌개 그릇을 붙잡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밖으로 튀어나온 남편은 한참을 무작정 걷다가 손에 쥐고 있는 스카프를 보고 양손으로 잡아 흔들며 너 때문이야 너! 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랑이 어려운 것은

사랑이 어려운 것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서로가 되기 위해선

주어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 주어야 하고

받아도 그냥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 받아야 하기에

사랑은 어렵습니다

 

짝사랑이란 많은 경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방식으로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한다 해도 내 방식의 사랑은

결국은 다른 모양의 짝사랑입니다

 

사랑이 어려운 것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때

사랑은 서로가 되기 시작합니다

 

 후기:

우리 모두도 내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방식으로 사랑할 때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신당한 사랑이란 많은 경우 서로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만 고집했기 때문에 오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2015.2.9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