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작업실 님의 아드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 어느 날 작업실 님이 불쑥 전화를 하고 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가을 냄새가 듬뿍 배어 있을 듯한 부시시한 머릿결을 연신 손으로 쓰다듬으며 평소와 다름없이 수줍은 자세로 들어오셨습니다. 차 한잔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문득 작업실 님이 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 제게 주셨습니다. 무슨 하는 뜻의 내 눈길을 받자 아드님이 결혼한다고 어렵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니 그러면 그냥 우편으로 보내셔도 될 걸 이렇게 집까지 오실 필요가 있느냐고 내가 묻자 그건 예가 아닐 것 같아 직접 전해드리고 싶었다고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답하셨습니다. 그때 작업실 님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참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아직도 이런 아날로그의 삶을 사시는 분도 있구나 싶어 가슴이 찡 했습니다.
작업실 님이 돌아간 뒤에 나는 서가에 쌓여있는 레코드 판들을 뒤져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찾아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그 중 결혼행진곡에 바늘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작업실 님이 주고 간 하얀 청첩장을 다시 읽으며 그 정성스런 초대의 말씀 위로 떠오르는 신랑 신부의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얼굴들은 행복이 넘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지난 주 내내 비바람으로 몸부림치 듯 심술궂던 날씨가 오늘 아침부터 진정을 하며 간간이 햇볕도 보이기에 마음속으로 다행이다 생각하며 아내와 더불어 결혼식 장소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왼편 상의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그날 작업실 님이 손수 전해준 청첩장이 다시 가끔씩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장이 가까워질수록 차의 앞 유리창이 환해지며 하늘이 활짝 개는 것을 보며 오늘 결혼식은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결혼식장으로 사용될 세인트 죠지 교회가 있는 엡섬의 랜훨리 거리로 접어들자 오클랜드의 유서 깊은 주택가답게 고아한 운치가 양쪽 길가의 오래 된 가로수들과 더불어 결혼식에 오는 빈객들을 그윽히 맞아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식장 앞에서 이천 님 부부를 만났고 또 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신 라라 님도 만났습니다. 준비해 간 축의금을 내려고 식장 입구에서 방명록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신랑측 접수처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신랑측 신부측 구별없이 그곳에서 함께 방명록을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큰 나무 같은 그림이 그려 있는 종이 위에 손도장을 찍으면 그 손도장 위에 하객의 이름을 써서 방명록이 되는 것이라며 내게도 여러가지 색깔의 인주가 담긴 인주케이스를 내밀었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나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 검지에 초록색 인주를 묻혀 손도장을 찍고 이름을 말한 뒤 다시 축의금을 어디서 받느냐고 묻자 축의금은 안 받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결혼식은 곧 축의금이라는 한국적 결혼 풍속에 식상해 있던 나에게 축의금을 안 받는다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세상은 변해가야 하는데 때로는 그 누군가가 바로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이 다시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축의금 접수 위주의 예식장 풍경에서 한걸음 더 나가 청첩장에 은행구좌번호를 인쇄해서 돌리는 개탄스러운 결혼 문화를 생각할 때 오늘 이 결혼식 풍경은 비로소 사람냄새가 진하게 나는 아름다운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입구에 훤칠하게 잘 생긴 아드님 신랑과 같이 서 계신 작업실 부부님과 축하의 인사를 나눈 뒤 식장인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와서 앉아 계셨던 시인과 나 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세인트 죠지 교회는 결코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내부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천정 벽 바닥 할 것없이 모두 목조로 정성스럽게 지어졌고 창문마다의 유리창은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역사 깊은 교회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성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알맞은 크기의 교회는 결혼식을 치루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여심은 님 내외가 오셨고 또 길을 찾느라고 애를 먹었다며 오미란 회장님도 오셨습니다. 하객들로 교회 안이 가득 찼을 때 우리말과 영어를 아울러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회자의 환영의 말씀으로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던 만큼 결혼식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절한 형식과 내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오래된 목조 내부를 낭랑하게 울리는 가운데 신랑 신부가 입장했고 이날 주례를 맡으신 젊은 목사님은 장광스런 주례사 대신 신랑 신부와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성경 말씀에 의거한 간략하고 유머스러운 주례로 결혼식 분위기를 이끌어서 신랑 신부가 결혼식의 참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객들 모두도 마음 속으로부터 신랑 신부를 축복하는 분위기 속에서 결혼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에 가족 대표로 인사의 말씀을 하신 작업실 님의 인사 말씀은 이날 결혼식의 백미였습니다. 수줍은 태도로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더니 ‘정말 가슴 많이 졸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씨가 도와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시작하더니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시기에 모두가 말씀 원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 종이를 펴서 보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고는 꾸벅 절을 하고 자리로 들어가셨습니다. 모두가 한순간 긴장했다가 다음 순간 그 긴장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결혼식에 가보았지만 이렇게 간명하고 감동적인 가족 대표의 인사말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인사말 속에는 양가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신랑아버지의 마음이 가득 들어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오늘 결혼식에서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식이 다 끝나고 하객들을 향해 그리고 이제 살아가야할 세상을 향해 나란히 걸어 나오는 신랑 신부의 모습은 며칠 전 이들의 청첩장을 앞에 놓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들을 때 내게 떠올랐던 바로 그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만 행복하게 평생을 같이 살아 가게나,’하고 속으로 축원하며 우리 부부는 이천 님 부부 여심은 님 부부 그리고 모처럼 만나는 정우성 님 부부와 더불어 피로연 장소인 ‘한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라라 님과 오회장님은 일이 있어서 피로연엔 못 오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참 아름다웠던 결혼식을 끝내고 나서는 길이라 그런지 도심 한복판을 거쳐 빅토리아 파크 옆의 ‘한식’까지 차를 몰고 가는 길이 한적하고 여유롭기만 했습니다.
‘한식’에 도착하자 미리 발빠르게 와 계신 시인과 나 님이 바깥의 아늑한 특별석을 우리 문학회 회원 분들을 위해 자리잡아 놓으셨기에 우리들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시인과 나 님은 즐겨 음료수 서빙을 해주셨고 이천 님과 여심은 님이 구수한 덕담으로 모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셨고 정우성 님이 중간 중간 우스개 말씀을 해주셔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잠깐 뒤 시작된 뷔페 식 점심 식사는 요리 하나 하나가 아주 맛깔스럽고 정성이 담겨져 있어 모두가 흡족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오늘 결혼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만족스럽고 훌륭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작업실 님이 우리들에게로 오셨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나오며 더 많은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그때 마침 신랑 신부가 인사를 하러 우리 자리로 왔고 작업실 님의 특별제안으로 우리 문학회원들과 신랑 신부가 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하여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서로 어깨를 포개면서 우리는 따뜻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문학을 중심으로 모인 모임이었지만 그때엔 문학회를 뛰어넘어 그보다 훨씬 끈끈한 가족 같은 사랑을 느낀 것은 아마도 저만은 아니었을 것이었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우리가 자리를 나섰을 때엔 하늘에선 가을 햇볕이 더욱 따뜻하게 내려 쪼이고 있었고 식당 안쪽에선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젊은이들이 터뜨리는 웃음소리가 마냥 유쾌 하기만 했습니다.
이날 결혼식은 이모저모로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결혼식
그건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네
그 결혼식에선 모처럼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이었네
그래서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네
그 결혼식에선 모처럼
축의금도 주례사도 겉치레도 주인공이 아니었고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었네
그래서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네
신랑 신부가 웃고 들어가
신랑 신부가 웃고 나오고
하객들도 모두 같이 웃었던
그 결혼식에선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었네
그래서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네
석운 김동찬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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