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밥을 먹은 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며칠 나갔다 올까? 아내는 대답대신 웃었고 우린 곧 간단한 나들이 준비를 한 뒤 집을 나섰습니다.
북의 도발도 트럼프의 망발도 한국 정치가들의 꼴불견도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어딘가로 떠나야 했었습니다 . 무작정 나선 길이라 어딜 갈까 하다 지난날의 추억이 묻어있는 곳들을 서서히 들려보며 북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푸호이의 카페에 들려 차 한잔을 하고 워크워스의 강변에 차를 새우고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활짝 핀 벗꽃과 철쭉을 만나 어린애처럼 소리를 지르다 아내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었습니다.
다시 차를 몰고 왕가레이까지 올라와 마리나 근처에 차를 대고 음식점을 찾다가 무심코 들어간 일식집 주인내외가 한국분들이어서 아주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맛있는 덥밥과 우동을 먹으며 그분들의 왕가레이 십년 정착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가레이에는 한국분들이 모두 이백 여명 사신다고 하셨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이층 사무실에 있다가도 한국분들이 손님으로 오시면 뛰어내려와 인사를 하신다고 주인아주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밥을 먹은 뒤 아주머니께서 타주시는 정성어린 라떼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서자 오클랜드로 돌아갈 때 꼭 다시 들리라며 문밖까지 따라나오시는 두분의 배웅을 받으면서 차로 돌아왔습니다.
차를 세워놓은 바로 옆에 시계박물관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니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습니다. 여자 직원이 따라들어와 어찌나 열심히 우리부부에게 전시된 시계의 역사와 사연을 설명해 주는지 천 육백점에 이르는 시계들도 좋았지만 직원의 친절이 너무 고마워 박물관을 나오며 아내와 같이 시니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정상요금 낼걸 그랬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박물관 바로 옆에 여행안내소가 있기에 들어가서 안내서를 이것저것 챙기고 30분 거리의 투투카카에 있는 모텔 한 곳을 그날 저녁 잘 곳으로 추천받아 예약을 하고 나왔습니다. 왕가레이에서 투투카카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환상의 드라이브 길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차창으로 빗방울이 떨어져 부서져 내렸지만 아내와 같이 하는 저녁 빗길 여행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모두 내려놓기에 족할 정도로 마음 편안하였습니다.
내비를 켜고 예약한 모텔을 찾아들어가는데 내비가 안내하는 길이 큰 길이 아니고 자꾸만 주택가 안쪽 길이었습니다. 비는 계속내리고 어둠마저 점점 짙게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모텔은 보이지가 않아 뭐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아는 곳도 아니고 다른 방법이 없어 그냥 내비에게 운전대를 맡겨보기로 했습니다. 계속 주택가 오름길로 가다가 아주 높은 언덕 위 외딴 집앞에 차가 다다갔을때 내비 속의 여인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아니 무슨 모텔이 이렇지 아무래도 잘못 왔나봐 라고 아내와 내가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릴 때 그집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 미스터 김 하고 물었습니다.
깜짝놀라는 우리를 안내한 그의 집은 바닷가 언덕 위의 저택이었고 우리가 잘 곳은 침대에서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별채의 작은 방이었습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작은 성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주인장의 말인즉 이 큰 집에 가족들만 있기 너무 외로워 별채를 좀 개조해서 숙박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아직 간판도 안 달았다고 했습니다. 숙박비도 우리가 생각한 것의 반 정도 밖에 안되기에 우리 내외는 이게 무슨 행운인가 그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하루종일 돌아다녔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밤새 자붕위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단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커튼을 여니 바다가 새벽안개와 더불어 유리창 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도 반가워 스마트 폰으로 한 컷을 찍고 어디로 보낼까하다 문학회 여러분 생각이 났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아내 옆에서 급히 몇자 적어 여러분께 올립니다.
오늘 또 길을 떠납니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릅니다.
2017.9.27. 석운 김동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