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

가을 숲속에서

석운 2017. 12. 13. 11:50

가을 숲속에서 - 혼불문학공원을 내려오며


세상의 모든 색깔이 다 모였구나

가을도 이미 떠난 숲속
초겨울 추위가 온 숲을 휩싸버렸는데
아랑곳없이 아랑곳없이 
차가운 대지위에서
색깔잔치를 벌이고 있구나


이 가을

떨어져 쌓여있는 잎사귀들이여

색깔로 세상의 모든 말을 뒤덮는구나

언부진색(言不盡色)*

너희들 앞에서

나는 문득 벙어리가 되고 싶다

(*言不盡意라는 옛말이 그날 言不盡色으로 입속에서 구르기에 그대로 써봤습니다. 말이 되는지?)



지난 달 전주에 갔다가 최명희작가의 혼불문학공원을 찾았습니다.


작가의 묘소가 안치되어있는 공원이라 찾았지만 건지산 자락에 자리잡은 이 문학공원은 들어가는 입구와 묘역 주변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작가의 짧은 생애 만큼이나 단아한 느낌을 주는 이 공원은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들려볼 것을 권하고 싶은 만큼 아름답습니다. 묘소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작가의생애를 생각했습니다. 나와 거의 동년배의 이 작가는 여인의 몸으로도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51년의 짧은 삶 속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초겨울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나를 더욱 춥게 만든 것은 아직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차가운 자책감이었습니다.


고개를 흔들면서 다시 한번 묘소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눈을 꽉 채우고 들어온 것은 가을 나무와 잎사귀들 그리고 합해서 어우러진 색깔이었습니다. 한참이나 그 색깔에 취해 서있다가 그만 내려가자는 아내의 채근에 정신을 차리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공원을 내려오면서 머리속에 떠오르는대로 써본 것이 위의 시(詩)입니다.


2017. 12. 13  서울에서 석운 김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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