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음악회

모짜르트를 사랑하는 분들이 모인 가운데 제144회 화요음악회가 잘 열렸습니다

석운 2016. 3. 15. 18:31

화창한 여름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 속에 살아가는 뉴질랜드 교민들은 날씨만으로도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인 가운데 144회 화요음악회가 잘 열렸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여자분들이 3분이나 새롭게 오셔서 한결 더 모임이 풍성해졌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음악회는 화요문화원(도서관)과 더불어 뉴질랜드 교민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오셔서 같이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보고 싶은 책을 빌려갈 수 있는 곳입니다. 모두에게 알려드려 보다 많은 분들이 이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예고 드린대로 오늘도 모짜르트의 음악과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지난 주에 보았던 다음 장면부터 이어보았습니다. 오늘 진행된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Mozart :피아노협주곡 23A장조 K488

절정기 모차르트의 음악성을 보여주는 걸작

1785 10월에서 1786 4월 사이, 모차르트는 세 편의 피아노 협주곡을 나란히 작곡했다. 그 세 곡은 바로 22 E플랫장조(K.482), 23 A장조(K.488), 24 c단조(K.503)이었다. 모두 오케스트라에 클라리넷을 기용한 점이 특이한데 이 세 곡은 모차르트가 남긴 스물일곱 편의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정점에 위치한다. 특히 23번은 친숙해지기 쉬운 선율과 단순 명쾌한 구상, 그리고 감명 깊은 느린 악장 등으로 인하여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사용된 21 C장조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으로 꼽힌다.

프랑스의 전기 작가인 장-빅토르 오카르는 이 작품에 대하여 “모든 것이 여과되어 있는 우아함과 단순성, 동시에 감각적이고 명쾌한 즐거움이 배어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것이 바로 “모차르트가 언제나 꿈꾸어 왔던 양식의 절정”이라고 극찬했다. 유창하면서도 우아한 1악장, 아름답고 우수 어린 2악장, 그리고 경쾌하며 활기찬 3악장으로 구성된 ‘A장조 협주곡’은 절정기 모차르트의 세련되고 심오한 음악성을 잘 보여주는 걸작임에 틀림없다.

Horowitz/Piano   Giulini/LaScala Orchestra의 연주로 듣자


지난 주에 이어 영화 아마데우스를 이어서 보았습니다.



 아마데우스 포토 보기

 

영화 아마데우스는제 57회 아카데미 8개 부문을 석권하고, 우리에게 ‘아마데우스’라는 모차르트의 이름을 친숙하게 각인시킨 명작이다. 거장 밀로스 포먼 감독은 단순한 전기 영화에서 탈피하여 천재 음악가와 그를 시기하는 노력형 음악가 살리에리를 대비시켜 인간이 가지는 본연적인 시기와 질투, 흠모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화는 가히 역대급이라할 만큼 명불허전이다. 우선 소품으로 시작하여 점차 오페라,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함께 밀도를 더해가는 내러티브는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다. 여기에 중간 중간 삽입되는 살리에리의 고백은 짧지만 임팩트 있고 유려한 편집은 영화와 현실과의 경계를 허문다. 꼼꼼한 고증으로 재현된 시대상은 영화의 격을 한 층 더 높이고 영상과 색감에서 시간의 경과를 다소 느낄 뿐 그 외에는30년 전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고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특히, 후반부 파국으로 치닫는 모차르트의 모습은 장엄한 음악과 함께 압권이다.

 

모두 3시간이 걸리는 대작이므로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Scene 16-30까지 보았습니.

다음주에 끝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디모데후서 2:20-22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쫓으라


요 즈음 우리 조국에서 청년들이 살기도 힘들고 취업하기도 힘드니까 태어날 때 물고 나오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 따라 삶의 질이 정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는 자조적인 한탄이 난무한다는데 과연 성경은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다음 주에도 모짜르트의 음악을 듣고 영화 아마데우스를 마저 보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운 김동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