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마지막 화요음악회(제173회)가 아름다운 잔치로 잘 열렸습니다.
예고해드렸던 대로 오늘은 포트럭으로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음악 영화를 보기로 한 날입니다. 그리고 호주에서 오신 박성기씨의 매씨들이 화요음악회를 위해서 특별히 노래를 불러주시기로 해서 더욱 기대가 되는 날입니다.
시간이 되자 한 두분 씩 손에 정성이 담긴 음식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하자 얼마 안돼 식탁 위엔 멋진 뷔페 상이 차려졌습니다. 서로 둘러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다가 차례로 뷔페 음식을 가져다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 여자라도 우리 한국 여자분들의 음식 솜씨를 당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두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자리를 정돈하자 박성기씨의 누님 박성실씨가 동생 박성순씨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해주셨습니다. 첫 곡은 고향생각이었습니다. 노래도 열창이었고 마침 연말에 듣는 고향생각이라 모두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 데서’의 찬양을 해주셨습니다. 노래제목만큼이나 우리 가슴속 깊은 곳의 영을 감동시키는 노래였습니다.
이어서 동생분 이신 박성순씨께서 ‘Oh Holy Night’을 피아노 반주없이 영어로 열
창해 주셨습니다. 노래도 어렵고 반주도 없었지만 일이 절을 끝까지 열창해 주셔서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그리고 앵콜 곡으로 찬송가를 불러주셨습니다. 박성순씨는 노래를 잘 하셔서 이미 CD까지 내신 분입니다.
두 분의 노래가 끝나자 듣고 있던 써니 자매님이 너무 감동했던지 스스로 한 곡 부르겠다고 자원해 나오셔서 역시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하나 불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흥겨워 할 때에 한일수박사님께서 선물을 준비해 오셨다고 제게 전해 주셨습니다. 서예에 조예가 깊으신 박사님께서 제172회 화요음악회를 기념하는 의미로 종이 부채에다가 손수 붓글씨로 ‘음악감상은
영혼의 소리와 교류하는 예술이다’라고 쓰셔서 제게 주셨습니다.
이렇게도 화요음악회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 화요음악회가 5년을 넘어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정에 없었지만 저도 몹시 감동해서 지난 주에 문학회 카페에 올렸던 ‘제172회 화요음악회를 맞으며’라는 글을 낭독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학의 밤에서 수필을 낭독했던 뒤로 50년이 넘어 처음으로 제 글을 낭독하는 기회였기에 좀 떨리기도 했지만 중간에는 감정이 복받쳐서 한참 멈추었다 읽어야 했었습니다. 여기 그 전문을 소개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시간의 길이로 보자면 누구나에게 한 해는 똑 같은 길이의 시간이겠지만 한 해를 보내는 사람들의 한 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 의하면 열 살짜리 아이의 한 해와 칠십 먹은 노인의 한 해는 그 느끼는 길이가 일곱 배가 다르다고 한다. 열 살짜리 아이의 한 해는 아이가 살아온 삶의 길이의 십 분의 일이기에 칠십 먹은 노인의 칠십 분의 일의 한 해와 그 느끼는 길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고 어느덧 나도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오래전 국민학교(그때는 초등학교라는 말 대신 국민학교라 했다) 6년의 세월은 영원처럼 길었던 것으로 느껴지는데 요즈음의 지나간 6년은 불과 일이 년 아니 겨우 몇 달의 시간 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그때의 일이 6년 전 아니면 5년 전의 일이라고 하면 그냥 어이도 없고 한숨만 포옥 나온다.
오늘 12월 20일은 172회 화요음악회를 하는 날이다. 오늘 들을 음악을 준비하다 문득 맨 처음 음악회를 시작한 날이 언제인가 찾아보았더니 놀라웁게도 2012년 3월16일이었다. 정말이지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만 5년이 거의 다 되었고 해가 지나면 6년째에 접어든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지나간 세월이 그렇게 아쉽고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좋아서 듣는 음악을 혼자 듣기보다는 이웃들과 같이 들으면 더욱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 음악회의 모습이 그날 처음 오셨던 분들의 얼굴과 더불어 바로 지난주의 일처럼 생생하기만 한데 벌써 5년이 지났다니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기만 하다.
우리 집이 시내에서뿐만 아니라 교민들이 많이 사시는 노스쇼어 중심가에서도 꽤나 멀리 떨어져 있어 오시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참가하시는 분들의 열성과 애정에 힘입어 지금까지 음악회를 계속할 수 있었다. 집사람과 더불어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다가 어떤 때 레이크 로드(타카푸나에서 데본포트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가 막혀 시간이 걸릴 때엔 우리 둘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먼 길을 마다 않고 매주 화요음악회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정말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고 그러니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둘이 보다 더 화요음악회를 알차고 유익하게 꾸며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 부부가 일 년에 한두 번은 오랫동안 여행을 가기에 일년에 석 달 이상은 화요음악회를 열 수 없었지만 우리가 오클랜드에 있는 한은 음악회를 거른 적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일 년에 평균 35회 정도는 음악회를 할 수 있었고 이제 172회 째 음악회를 맞게 되었다. 음악회에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어느 분은 우리 화요음악회는 2,000회까지 가야합니다 라고 하셔서 모두 웃은 적이 있지만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는지는 나도 모른다. 건강과 다른 여건이 허락하는 한은 계속하겠지만 앞으로 10년을 더한다고 하면 아마도 500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하튼 잘하면 내년 연말쯤엔 200회 화요음악회를 열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가슴이 뛴다.
6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에게 음악이란 학교 음악시간에 접하는 음악이 전부 다였다. 그 당시 모두가 가난한 시절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 집에 라디오도 없었기에 그 흔한 유행가 하나 변변히 듣지도 부르지도 못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어느 여학생 하나와 영화 구경을 갔는데 그 때 광고 시간에 백설표 설탕 광고의 시그널 뮤직으로 나온 멜로디가 소녀의 기도였다. 그런데 그 소녀의 기도는 그 당시 우리 동네에 오는 쓰레기차가 동네 골목길을 누비면서 사람들에게 쓰레기차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그널 뮤직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 음악이 소녀의 기도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생전 처음으로 여학생과 더불어 영화 구경을 갔으니 가슴은 뛰고 무슨 말인가 하기는 해야겠기에 설탕 광고가 끝나자 나는 자랑스럽게 저 음악은 내가 아는 음악이라고 했다. 무슨 음악인데요 하고 짐짓 모르는 체 그 여학생이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저건 쓰레기차가 오면 울리는 음악이라고 그런데 그 음악을 설탕광고에서 사용하니 아이로니칼 하다고 제법 진지하게 답했다. 저 음악 제목이 뭔지 아세요 라고 그녀가 재차 물었을 때 나는 제목은 무슨 제목이냐고 그냥 쓰레기 치는 신호 대신 울리는 음악이라고 무시하듯 말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왔다.
나중에 같은 과의 다른 여학생들로부터 나는 그녀가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과 피아노를 아주 잘 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백설표 설탕 광고에 나온 음악은 쓰레기 치는 음악이 아니고 폴란드의 여류작곡가 바다르체프스카가 작곡한 소녀의 기도라는 아주 유명한 피아노 소품 음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얼굴이 혼자 후끈거렸다. 영화관 사건 이후 교정에서 가끔 마주 치면 알듯 모를 듯 미소를 짓던 그녀의 미소가 필경 나를 비웃는 웃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제부터 죽기살기로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들어서 알자. 제까짓 게 음악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석 달만 들으면 너 쯤 따라잡는 건 문제도 없어. 혼자서 마음을 정한 나는 그날부터 강의가 없거나 끝나고 나면 학교 앞 학림다방(고전 음악감상실로 유명한 동숭동 옛 서울대학교 맞은편에 있던 다방)에 살림을 차리고 앉았다.
처음엔 부끄러움과 오기로 쓴 한약 먹듯이 듣기 시작한 고전음악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까지 정서 불모의 사막과 같던 나의 감성에 제대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 음악이 갖다 주는 음(音)의 세계는 그때까지 내가 알았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녀의 기도를 몰라 부끄러움을 당해야 했지만 그 여학생 덕분에 나는 청년시절의 이성과의 어설픈 사랑 대신에 무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음악과의 사랑 속에서 대학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그 여학생과 만나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또 백설표 설탕과 쓰레기차와 소녀의 기도를 이야기하면서 포복절도하였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여학생에게 음악의 눈을 뜨게 해준 동기를 부여해 준 것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했다. 그때 나를 보는 그 여학생의 눈빛은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힐난하듯 빛나던 눈빛과는 아주 다른 눈빛이었다.
음감(音感)이 없어서 그리고 음악 과목을 중요시하지 않던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녔기에 음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우연한 기회에 아주 유치한 사건을 계기로 듣기 시작한 음악이 나의 삶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대단하다. 더더욱 그렇게 들었던 음악 덕분에 만년에 이국땅에 와서 음악을 통해 여러분들과의 귀한 교류를 쌓게 된 것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계속될 화요음악회를 통하여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더욱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 나가며 고국을 떠나 이 머나먼 남쪽 작은 나라에 살면서 때로 외로움에 가슴앓이를 하는 우리 교민들에게 작은 위로의 시간을 마련해드릴 수 있다면 너무도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글을 쓰는 지금 내 방에서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마지막 악장이 시작되고 있다. 연말에 꼭 듣고 넘어가야할 음악 중 거의 첫 번 째 목록에 드는 이 교향곡을 오늘 172회 화요음악회에서 듣기로 했기에 먼저 들어보고 있다. 조금 있으면 한스 호프의 웅장한 테너가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터뜨릴 것이다. 듣고 또 들어도 가슴을 조이게 만들고 가슴을 울리게 만들고 가슴이 시원하도록 터지게 만드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이 저녁에 음악을 사랑하는 화요음악회 회원들과 더불어 같이 들을 생각을 하니 다시 한 번 가슴이 벅차오른다. 5년 전 첫 화요음악회를 시작했던 그날도 베토벤의 음악으로 첫 곡을 들었었는데 아무래도 베토벤과 화요음악회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나 보다.
문득 대학시절 흔히 중얼거렸던 미국 여류 시인 에드너 빈센트 밀레이의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서’라는 시가 생각나서 그 시의 처음 몇 줄을 여기 소개하므로 이 글을 끝내려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서(On hearing a Symphony of Beethoven)
감미로운 소리여 오 아름다운 음악이여 그치지 말라(Sweet sounds, oh, beautiful music, do not cease!)
나를 세상 속으로 다시 뿌리치지 말라(Rejest me not into the world again)
--------------------------------이하 생략-
베토벤의 음악이 얼마나 좋았으면 시인은 음악이 끝날 것을 두려워한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좋은 음악이 나왔을 때 어떤 때는 그 음악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한다. 시인은 다시 걱정한다. 음악이 끝나면 저 번잡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을. 그렇기에 절규한다. 나를 세상 속으로 다시 뿌리치지 말라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그리고 화요음악회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들. 다가오는 2017년에는 화요음악회가 더욱 여러분의 삶에 작은 활력소를 주는 그리고 서로 아껴주는 사람들끼리의 아름다운 대화의 장이 되는 그런 모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화요음악회에 오시는 분들이 시인 멀레이처럼 '오 아름다운 화요음악회여 그치지 말라 우리를 세상 속으로 다시 뿌리치지 말라'라고 노래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 되기를 기대하며 2016년 연말에 이 글을 드립니다.
2016년 12월 20일 석운 씀
낭독이 끝난 뒤 우리 화요음악회의 개근회원이신 강산님께서 ‘아베 마리아’외 ‘베싸메무쵸’ 두 곡을 멋지게 불러 주셔 다시 흥을 돋구었습니다. 모두가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이제 자리를 음악감상실로 옮겨 영화 감상을 했습니다.
오늘 감상한 영화의 제목은 ‘더 콘서트(The Concert)’로 다음과 같은 내역입니다.
구소련의 브레즈네프 시절, 촉망받던 지휘자 안드레이 필리포프는 오케스트라에서 유태인 연주자들을 몰아내라는 당의 지시를 어겨 지휘를 그만두게 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삭히며 30년 동안 볼쇼이 극장의 청소부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극장장의 방을 청소하다가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보내 온 팩스를 우연히 발견한다.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를 파리에 초청하고 싶다는 그 팩스를 읽는 순간, 그의 머리에는 무모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이미 연주를 그만 둔 옛 유태인 동료들을 규합하여 정규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 대신 파리로 연주 여행을 떠난다. 지휘자 필리포프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젊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안느-마리 자케와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 과연 필리포프와 안느-마리 자케의 관계는? 그리고 그들이 연주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마지막 20여분의 숨막힐 듯한 연주와 숨겨졌던 이야기의 전개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음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음악가의 삶과 애환이 가슴을 감동으로 적셔내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였지만 너무 좋은 영화였기에 모두가 영화 속의 주인공들과 더불어 같이 웃고 같이 울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헤어지기 아쉽지만 새로운 해 2017년을 기약하며 헤어져야 했습니다. 1월에는 휴가 때라 두 주일 쉬고 새해 첫 화요음악회는 1월17일에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더욱 알찬 화요음악회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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