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차이콥스키는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를 듣기 시작하는 25회 화요음악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새로 오신 아이리스 자매님, 재영이 아빠, 그리고 손제리 회계사 내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날 65회 생신을 맞은 이강산님께 다시 축하를 드립니다. 다같이 생일 축하노래와 더불어 박수로 강산님의 건강을 기원했습니다.
다음은 이 날 진행된 음악 감상 내역입니다.
Petyer Tchaikovsky(1840-1893)
19살 나이에 음악과는 무관한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성 서기관으로 취직하여 잘 나가다가 때려치우고 23살 나이에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공부를 시작하고 3년 뒤 1866년 23살의 나이에 1번 교향곡을 전격 발표한다.
모두 6개의 교향곡을 썼고 그 중 가장 잘 연주되는 것들이 4,5,6번이지만 이 1번 교향곡만큼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가슴 속을 잘 대변해 주는 곡도 없다. 젊은 예술가의 패기와 낭만이 잘 들어나 있는 곡이며 순수하고 아름답다. 결코 6번 비창 교향곡에 비해 뒤질 수 없는 예술성과 서정이 들어있다.
Symphony No 1 in G minor OP 13. ‘Winter Dreams’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1번은 그의 첫 번째 대작으로, 전통적인 4악장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작곡가 스스로 곡명을 부친 그의 첫 번째 교향곡으로 겨울로 상징되는 조국 러시아의 땅과 쟈연을 사랑한 곡이라고 생각된다. ‘겨울날의 환상’이란 부제는 아마도 러시아의 눈 덮인 황량한 대지 위로 떠오르는 겨울 낮의 환상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Rostropovich &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의 연주로 듣는다)
1악장: ‘겨울 여행의 몽상’ Allegro tranquillo
먼저 러시아 풍의 제1주제가 플루트와 파곳에서 등장해 활기찬 리듬을 타고 흐른다. 마치 트로이카(세 필의 말이 이끄는 러시아 썰
매)가 방울소리를 내며 눈보라를 가로지르며 달려 나가는 듯하다. 클라리넷으로 제시되는 제2주제는 한결 유려한 느낌으로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수를 머금고 있다. 때론 상쾌하고 때론 긴박하며 때론 신비로운 겨울날의 여행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2악장: ‘어둠의 땅, 안개의 땅’ Adagio cantabile ma non tanto
약음기를 단 현악기들의 은밀한 합주로 시작되는 아다지오 칸타빌레의 느린 악장이다. 오보에에서 흘러나와 점차 현악기들로 번져 나가는 러시아 풍 선율이 사뭇 애절하면서도 감미롭다.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듯 몽환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매혹적인 악장이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호른 연주도 인상적이다.
3악장: 춥고 오랜 겨울 여행에 지친 여행자들의 꿈 Scherzo. Allegro scherzando giocoso
2악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세분된 바이올린 파트와 목관 사이를 오가는 주선율이 현의 피치카토와 어우러지며 경묘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자아내는 스케르초도 흥미롭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표정 풍부한 선율을 춤곡 리듬에 실어 노래하는 트리오의 낭만적인 풍미가 일품이다.
4악장: 꽃망울이 열리고 Finale. Adante lugubre - Allegro maestoso
비장한 느낌을 주는 느린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현악기에 흐르는 선율은 1861년 카잔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불렸던 민요조의 노래를 차용한 것이다. 이 선율은 주부에서 제2주제로 다시 등장하는데 다분히 선동적인 느낌이다. 주부는 두 개의 박력 넘치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격정적으로 전개되는데 특히 재현부 이후의 흐름이 무척 이채롭고 인상적이다. 즉 제2주제가 재현되다가 말고 다시 도입부의 악상으로 돌아갔다가 점진적인 고조를 통해서 더욱 거창하고 눈부신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Rostropovich Cello, Karajan & Berlin Phil 연주로 듣는다)
사진은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차이콥스키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Op.33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1876년 12월에 작곡되었다. 당시 36세의 차이콥스키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원장으로 있던 모스코바 음악원에서 화성학 이론을 가르치고 있었던 그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에 처했고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했으며, 자신의 천성에 맞지 않는 결혼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하고 우아한 18세기 음악으로의 휴식
당시 그의 상황은 객관적으로는 나쁜 듯 보였지만, 음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는 여행과 음악의 풍요로움을 만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한동안 경제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로코코 변주곡>을 작곡한 이후 작품과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부유한 미망인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을 소개받아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이 만남으로 인해 그는 안심하고 전적으로 작곡에 매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폰 메크 부인과 차이콥스키는 평생토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14년 동안 계속된 그들의 엄청난 양의 편지로부터 목가적 순애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폰 메크 부인이 정기적으로 보내준 돈 덕택에 그는 모든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더군다나 가르친다는 의무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실패로 끝났지만 정신적인 홀가분함을 얻게 된 결혼과 결별(이혼은 이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걸친 여행과 사교생활 등등으로 그는 정신적으로도 충만할 수 있었다..
1876년 서두에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작품은 교향적 환상곡인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로 당시의 초조하고 격정적인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첼로를 위한 변주곡을 작곡하면서 차이콥스키는 불안한 상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18세기의 보다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빠져들고 싶어 했다. 바로 그가 존경했던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대변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과거를 재해석하려는 그의 의도에 맞추어 차이콥스키는 독주 첼로를 고전주의 규모에 맞는 실내악단, 즉 2관 편성에 두 대의 호른과 현이 반주하도록 의도했다. 이런 규모는 독주자의 멜로디와 기교적인 표현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솔리스트의 표현을 잘 살려줄 수 있었다. 한편 음악 양식에 있어서 그는 변주곡을 선택했다. 이 양식으로 작곡가는 스스로 순서와 한계를 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오리지널 주제를 모차르트가 썼을 법한 네 마디의 균형감 있는 모양으로 단아하게 꾸몄다. 조성은 모차르트의 가장 감동적인 작품들에서 사용되었던 A장조였다. 이 곡은 18세기 모차르트 풍의 우아한 첼로가 매력적이다. 이 변주곡은 모차르트에 대한 오마주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모방작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작은 목관의 에필로그는 주제에 이어 불규칙적인 음정으로 변화하지 않고 반복되며, 이는 독주 악기가 넘겨받은 뒤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이는 18세기 오스트리아보다는 19세기 러시아 전통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주제를 이끄는 표현력이 풍부한 관현악의 도입부부터 마지막 코다의 질주까지, 음악의 자연스러움과 윤기는 차이콥스키가 아니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Piano Concerto No.1 in Bb minor, Op.23
(Rubinstein /Piano, Leinsdorf/Boston S.O.의 연주로 듣는다)
아마도 피아노라는 악기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유명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초연된 지도 어느 새 15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과 유명세는 점점 더 증폭되어 왔지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의 이 대곡은 피아니스트라면 응당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해야만 하며, 이 곡을 통해 비로소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을 정도로 프로 연주자로서의 가능성과 예술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총 세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 가운데 1번 협주곡만이 유독 유명하다. 흥분에 들뜬 회상이든, 괴롭고 즐거운 기억에 대한 체념이든 간에 이 곡의 가장 큰 주제는 ‘향수’다. 이 ‘향수’가 바로 러시아 낭만주의를 지탱하는 뿌리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도 항상 느껴왔듯이, 러시아인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 바로 절망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능력이다.
피아니스트들의 시작이자 끝인 거대한 협주곡
차이콥스키는 절망과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이 곡의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엔 감동적이고 성공적인 작품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러시아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철인 3종 경기에 맞먹을 만한 강인한 지구력과 원자폭탄과 같은 폭발력, 목가적이고 가요적인 정서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러시아적인 멜랑콜리가 이 곡의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피아니스트의 마법적인 음색과 초인적 기교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이 작품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구제불능의 2류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다
차이콥스키의 얼룩진 삶에 끈질기게 실처럼 따라다녔던 것은 신경쇠약 증세였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민감했던 차이콥스키는 그가 음악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모차르트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형식미와 구성력의 부족함을 특히 한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비판하고 회의했던 그는 이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의 스승이자 당시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부로 손꼽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이 작품을 보냈고 그의 의견을 기다렸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루빈스타인은 이 작품을 엉뚱하고 기괴하며 거북스럽기 그지없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곡이라고 신랄한 평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연주하기에 너무 어렵고 악정들은 너무 잘게 조각 나 있으며 서투르게 취급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이런 2류 작품은 반드시 대대적으로 수정을 해야만 자신이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차이콥스키가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쓴 편지에 대체적으로 정확하게 적혀 있다.
격분한 차이콥스키는 독일의 명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던 뷜로는 이 곡을 미국 연주회 도중 1875년 10월 25일 벤저민 존슨 랑의 지휘와 함께 보스턴에서 초연했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도 연주해 호평을 받게 되었다. 결국 3년 뒤에는 루빈스타인이 직접 화해를 구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우정은 다시 회복되었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분명 루빈스타인의 비평에 “나는 음표 하나라도 고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결국 고치고야 말았다. 차이콥스키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이 작품을 최초로 본 루빈스타인의 비판은 무시했다. “진정 하나의 진주와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한 초연자 뷜로가 어떤 조언을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1876년 런던 초연의 협연자로 나선 에드워드 댄로이터의 수정이 두 번째 판본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댄로이터는 초연 당시 프로그램 노트에 해설을 쓰기도 했다. 1969년 발견된 댄로이터의 가필 판본은 그의 수정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차이콥스키는 1876년 댄로이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현명하고 실제적인 제안들’에 감사를 표했고, 재출판될 경우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썼다. 차이콥스키는 루빈스타인의 감정에 찬 비판은 거부한 채, 댄로이터의 건설적인 제안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렇게 차이콥스키의 걸작 3곡을 전곡 감상하는 것으로 오늘의 음악 감상을 끝내고 잠시 성경말씀응 상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편 9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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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1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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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2 |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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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3 |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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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4 |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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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5 |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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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6 |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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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7 |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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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8 |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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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9 |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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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10 |
내가 사십 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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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5:11 |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
히브리서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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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19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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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20 |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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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21 |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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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22 |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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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23 |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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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24 |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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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0:25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시편과 히브리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또 만나 계속해서 차이콥스키를 듣겠습니다.
석운 김동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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