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음악회

3번째로 시벨리우스를 듣는 제75회 화요음악회도 잘 열렸습니다

석운 2014. 3. 12. 06:50

75회째가 되는 이번 주 화요음악회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산우 배산임수께서 멀리서 오셨고 또 오클랜드 문학회의 운무님, 그리고 Angela가 영국에서 방문차 뉴질랜드에 오신 Andy까지 더불어 같이 오셨습니다. Eden 교회의 이경애님이 처음 나오셨고 신장로님도 오랜만에 나오셨습니다. 또한 멀리 Kumeu에서부터 오시는 김운대 World TV 국장님 내외분을 포함한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항시 가운데 자리를 터주대감같이 지키시는 강산님 내외분이 한국 방문차 안 계시기에 그 빈자리가 자못  크게 느껴집니다. 가신 일을 잘 마치시고 빨리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3번째로 시벨리우스를 들은 이날 저녁의 진행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히 이날엔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뉴질랜드 제품인  Perreaux의 Phono Stage를 다시 세팅해서 들었더니 엘피 판으로 듣는 현악사중주와 실내악이 한결 음이 풍성해졌기에 마음마저 더 여유로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Symphony No. 4 (교향곡 4)

 

교향곡 4번은 1911년에 시벨리우스가 헬싱키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조용한 , 자연의 나무들 속에 채의 오두막을 짓고, 거기서 악상을 다듬으면서 완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909년에 핀란드 북부의 콜리산() 여행했던 시벨리우스가 크게 감동을 받아 곡을 쓰기로 작정했고 산을 소재로 작품이 또한 교향곡이기도 하다. ‘ 교향곡은 나의 영혼이 어느 작품보다도 반영된 작품이다라고 그가 말했듯 그의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를 표출시킨 작품이다.
1악장은 없는 세월을 방황하는 마음처럼, 곡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어두운 가락은 절망을 나타낸다. 2악장은 경쾌하게 튀는 리듬이 즐거운 마음을 나타내지만 어딘지 불안하다. 3악장은 거친 아름다움과 전원의 꾸밈 없는 정경이 표현된다. 4악장은 풍부한 색채와 깊고도 그윽한 맛을 내포한 환상적인 악장이다.

Neeme Jarvi 지휘하는 The Gothenburg Symphony Orchestra 연주로 듣는다.

산을 주제로 교향곡 4번을 듣고 나서 잠깐 산에 관한 선비의 좋은 말씀을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수간산 간인간세(看水看山 看人看世)

지리산을 12번이나 올랐던 조선중기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은58 유람기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물도 보고 산도 보고 사람도 보고 세상도 보았다" 적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요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아니면 그냥 산이 좋아서 산에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등산이 대세고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많이들 다닙니다. 그냥 다니는 것도 건강을 위해 좋겠지만 산에 갔다가 영감을 받아 교향곡을 작곡하는 시벨리우스나 또는 산을 오르내리며 사람과 세상을 보는 남명선생에게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산에 다니면서 앞사람 엉덩이만 보았다는 수준을 넘어 看水看山 看人看世, 물도 보고 산도 보고 사람도 보고 세상도 있는 눈을 키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Canzonetta Op. 62-1

1903년에 작고했었던 부수음악 'Kuolema(죽음)' 1911년에 재공연되었을 시벨리우스는 여기에다 곡을 추가시켰는데 나중에 곡을 현을 위한 칸쪼네타 독립시켰다. 부드러운 우수가 지배하는 곡은 대위법적인 대선율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작품으로 선율의 아름다움이 특히 두드러진 곡이다. 훗날 스트라빈스키가 헬싱키를 방문해서 곡을 듣고 나는 북구의 이탈리아화된 이런 가락을 좋아한다 시벨리우스에게 경의를 표한 바가 있다.

 

Neeme Jarvi 지휘하는 The Gothenburg Symphony Orchestra 연주로 듣는다.

 

Romance in C for string orchestra Op. 42

곡은 거창한 음악적 사상을 소규모의 악기 편성만으로 표현하는데 시벨리우스가 얼마나 비상한 재주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입부에 있어서의 음색의 대비 그리고 레시타티프 풍의 선율에 의한 극도의 긴장감, 또한 풍부한 표현력으로 악상이 엇갈리게 가는 진행은 차이코프스키에서 들을 있는 음악적 표현과 현의 울림을 느낄 있다.

Ramino Sariola/Cello  Hui-Ying Liu/Piano 연주로 듣는다

 

 

             Valse Triste(슬픈 왈츠), Op.44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춤곡

1903 시벨리우스는 그의 동서인 극작가 아르운트 야르네펠트의 희곡 'kuolema(죽음)' 음악을 붙였다. '슬픈 왈츠' 중의 일부이며 나오는 장면은 임종을 앞둔 부인이 비몽사몽간에 왈츠의 가락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환상의 손님과 왈츠를 춘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춤이 그치고 손님은 사라지고 문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있다. 야릇한 몽상미에 음악이라 있다. 곡은 '생상스의 죽음의 ' 같은 맥락인 '시벨리우스의 죽음의 ' 이라 있다. 그러나 유럽의 검고 깊은 특유 자연을 반영하는 기괴한 분위기와 생상스의 음악에서는 느낄 없는 섬뜩한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

 

슬픈 왈츠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

아들은 위독한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매일 병상을 지키고 있다. 이제 어머니의 병도 심해졌지만 아들도 많이 지쳤다.

"밤이다. 어디선가 빛과 음악이 차차 가까이 와서 끝내 왈츠의 멜로디가 귀에 들린다. 자고 있던 어머니는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 양손을 흔들며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음악에 맞추어 춤을 청한다. 아들은 아연해서 그저 어머니의 춤을 바라 뿐이다. 드디어 손님들이 나타난다. 이들 기괴한 환영들은 무시무시한 왈츠 리듬에 따라 돌기 시작한다. 죽음에 처해 있는 그녀도 댄서들과 같이 춤을 추며 그네들의 얼굴을 보려고 하나 그림자와 같은 손님들은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얼마가 지나 그녀는 피곤해져 침대에 눕는다. 따라서 음악도 멈춘다. 조금 다시 음악이 시작되고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더욱 힘있게 춤을 춘다. 음산한 춤이 절정에 도달했을 누군가가 문을 두들긴다. 문이 활짝 열린다. 모친은 절망의 비명을 지른다. 유령의 손님들도 사라져 없어졌다. 음악도 사라진다. 죽음이 앞에 있다. 이튿날 아침 아들이 눈을 떴을 , 침상의 어머니는 숨을 거둔 후였다 

 

      이 유명한 곡을 개의 다른 연주로 들어본다.

 

 

1. Neeme Jarvi 지휘하는 The Gothenburg Symphony Orchestra 연주로 듣는다.

2. Ramino Sariola/Cello  Hui-Ying Liu/Piano 연주로 듣는다

  

현악사중주 Bb minor, op 4 (1890)

곡은 지난 들은 A minor 현악사중주와 더불어 시벨리우스의 아주 젊었을 때의 작품이다. 그의 유명한 G minor 현악사중주 친근한 목소리 밀려 자주 연주 되지는 않지만 곡도 아주 아름다운 곡이다. 1악장에선 희미하게나마 베토벤이나 슈만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에서는 낭만의 색채가 핀란드의 민속노래의 서정과 더불어 묻어 나온다. 절제된 고전주의의 형식에서 작곡된 곡은 나중에 작곡가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The Sibelius Academy Quartet 연주로 듣는다.

 

 

  음악 감상을 마치고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사야서 61 1-3절입니다. 

[]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절과 2절은 누가복음 4 18-19절에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선포하신 구절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땅에 오신 이유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땅에 보내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믿는 예수를 땅에 전파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성경 말씀입니다. 주의해야 것은 하나님의 신원의 이라는 구절입니다. 날은 하나님께서 사단을 정복하는 날이며 또한 심판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른 쪽에 있을지 아닐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시벨리우스를 듣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운 김동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