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회 화요음악회에는 반가운 얼글들이 나타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한국 방문으로 석달간이나 자리를 비우셨던 올레님 부부가 어제 귀국하셔서 여독도 안 풀리셨을텐데 달려오셔서 모두에게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그 동안 너무 바쁘셔서 뜸하셨던 산목동님이 그 환한 얼굴로 나타나셨고 또 오클랜드 문학회의 회장님을 비롯한 여성회원분들이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번 99회에는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란 영화를 감상하고 100회가 되는 12월23일에는 저녁식사와 더불어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 잔치로 끝을 낼것이기에 오늘 98회가 사실상 금년의 마지막 순수음악감상의 날인데 어떻게들 아시고 이렇게들 오셔서 풍성하게 자리를 만들어 주시는지 주관하는 사람으로도 참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예고해 드렸던대로 오늘 음악회에서는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을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1시간 반이 넘는 긴 연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진지한 자세로 감상을 하셨고 특히 4악장 피아니시시모로 마무리되는 긴 여운의 음이 끊어질듯 계속되는 동안 듣는 모든 분들은 차라리 영원히 끝이 나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동안 3개월이 넘도록 들어온 파가니니와 말러의 음악 듣기를 끝내고 내년 다시 시작하는 101회 화요음악회부터는 새로운 기획으로 훨씬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음은 오늘 들었던 말러의 9번 교향곡의 설명입니다.(대부분인터넷에서 발췌했습니다)
Mahler, Symphony No.9 in D major
말러의 교향곡 9번은 죽음에 관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에 대한 예감은 말러의 교향곡 9번 곳곳에 배어 있다. 1악장에는 죽음에 대한 체념과 이별의 느낌을 암시하는 제1주제와 죽음에 대한 필사의 저항을 담은 제2주제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부정맥을 나타내는 독특한 리듬 형이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강렬하게 연주되며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2악장에선 저승사자의 깡깡이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3악장에는 삶을 조롱하듯 난폭한 푸가가 펼쳐진다. 4악장은 느린 아다지오의 찬송가 풍의 숭고한 음악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마치 죽어가듯 사라져간다.
이렇듯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몰락과 죽음의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 작품을 새롭게 보는 이들도 있다. 음악학자 피터 브라운은 이 교향곡이 “이별과 슬픔의 분위기가 깔려 있는 작품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건축적인 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신음악의 첫 장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지나치게 죽음과 관련시킨 기존의 해석 때문에 이 교향곡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음악인지 간과하기 쉽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은 ‘전통적인 교향곡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말러의 교향곡 9번에서 우리는 기존의 교향곡 형식과 기법들이 서서히 부패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죽어가는 교향곡’
1악장 도입부부터가 기존의 교향곡과 달리 매우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간단한 모티브와 음의 단편들이 그저 툭툭 던져지듯 나열되는 이 음악은 마치 점묘주의 회화와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여섯 마디의 도입부를 지나 제2바이올린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되는 D장조의 주제 역시 기묘한 느낌을 주는 건 마찬가지다. 이 주제는 F#에서 E로 하행한 후 으뜸음인 D로 결코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E음에 머무르면서 강한 긴장감과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이 주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고별’의 주제 선율과 화성이 유사해 ‘이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2악장은 조금 느린 렌틀러(Ländler, 오스트리아 고지대에서 추던 춤곡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말러 등의 작품에 자주 나타남)와 빠른 왈츠가 교대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전통적인 렌틀러와 왈츠의 3박자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제스처로 표현되어 기존의 정형화된 춤곡 형식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빠른 왈츠에서 타악기와 관악기가 거칠고 노골적으로 연주하는 ‘쿵작작’ 리듬은 우리가 왈츠에 대해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우아하고 가벼운 춤곡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3악장도 시끄럽고 야만스럽기는 만만치 않다. ‘부를레스크’(Burleske)라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음악은 풍자와 조소로 점철되어 있다. 단순한 선율과 복잡하고 정교한 푸가토(Fugato,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 ‘푸가’라는 장르가 아닌 기악곡에서 푸가와 같은 방식으로 모방 기법이 사용된 부분)가 교대로 나타나면서 마치 인생을 조롱하는 듯 하다. 놀랍게도 후반에는 그 모든 조롱과 비웃음이 갑자기 중단되고 더없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타난다. 이때 트럼펫이 연주하는 고귀한 선율은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 황홀한 에피소드가 끝나갈 무렵에 갑자기 클라리넷이 트럼펫의 고귀한 주제를 비틀고 왜곡한다. 이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말러의 제자이자 지휘자인 멩겔베르크는 특히 이 부분에 주목해 ‘사탄’ 또는 ‘공포의 찡그림’처럼 연주하라는 지시를 첨가하기도 했다.
4악장에 이르면 그 모든 풍자와 비웃음은 사라지고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정화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여기서는 이별의 주제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마치 찬송가와 같이 감동적으로 연주된다. 그러나 종결부에 이르면 다른 악기들은 연주를 멈추고 오로지 현악기만이 남아 말러가 악보에 적어 놓은 ‘죽어가듯이’(ersterbend)라는 악상지시어를 끊어질 듯 여린 소리로 구현해낸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말러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네 번째 곡 ‘아이들은 잠깐 외출했을 뿐이다’의 선율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천국으로 떠났을 뿐이다. 우리도 곧 그 광명 넘치는 천국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말러는 그의 교향곡이 죽어가는 순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장녀 마리아를 생각했던 것일까? 어린아이의 선율은 채 마무리되지 못하고 피아니시시모(ppp, 피아니시모보다 더 여리게)의 여리고 긴 음의 여운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Karajan이 지휘하는 Berlin Philharmony의 연주로 듣는다
이렇게 해서 음악감상을 마치고 하나님 말씀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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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1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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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2 |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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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3 |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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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4 |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
다음주 99회에는 만나서 영화감상을 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운 김동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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