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음악회

제114회 화요음악회가 잘 열렸습니다

석운 2015. 5. 19. 20:04

오늘 화요음악회엔 뜻밖의 반가운 손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로토루아에서 올라오신 손진길 목사님 내외분께서 화요일에 오클랜드에 온 김에 화요음악회를 보시겠다고 오셨고 한국에 갔다 얼마 전에 돌아오신 김정희 장로님도 오시고 또 어머님 병간호 차 한국에 갔다 돌아오신 서니 자매님도 오셨습니다.

여러 반가운 분들과의 이야기 꽃이 필때에 오문회의 시인과 나님이 또 책을 잔뜩 차에 싣고 오셨습니다. 이곳 오클랜드의 작은 문화의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가장 많이 도와 주시는 분이 시인과 나님이십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음악회에선 바하의 음악과 또 신청곡으로 들어온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를 들었습니다.

특히 바하를 들으면서 꼭 한 번은 들어야 할 '마태 수난곡'을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오늘 진행된 곡 내역입니다.

 

BACH; PARTITA for SOLO VIOLIN in D minor BWV 1004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인데 마지막 곡 Chaconne 때문에 그렇다. 종종 이 샤콘느만 따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모두 5곡으로 되어있는데

Allemande, Courante, (프랑스 춤곡) Sarabande(진중한 느린 춤곡),

Gigue(영국 풍의 소박한 춤곡), Chaconne(스페인 무곡)로 되어있다.

 

바하는 이 샤콘느에서 주제를 30번 변주시키며 처절하리만큼 드높은 긴장과 완화의 드라마를 구축한다. 브람스는 이 곡에 대해 클라라 슈만에게 이렇게 적어보냈다. ‘샤콘느는 가장 경이롭고 신비한 작품입니다. 그분은 하나의 작은 악기를 위해 가장 심원한 사상과 감정의 여울을 남김없이 표출하고 있습니다.------‘

Henryk Szeryng의 바이올린으로 들었습니다.

 

BRAHMS: Clarinet Quintet in B minor

 

1891 마이닝겐 궁정 악단의 클라리넷 주자 뮐펠트의 뛰어난 기량과
아름다운 음색의 연주에 감명을 받은 브라암스는 클라리넷 3중주곡과

클라리넷 5중주곡, 3 후엔 곡의 클라리넷 소나타를 작곡합니다.


만년의 작곡가는 클라리넷의 음색을 좋아했고 악기를 통해 인생의 낙일을 직감한 체념의 심경을 토로했다. 클라리넷의 특성과 기능을 충분히 살리
면서 현과 균형감을 이룬 작품은 작곡가의 대표적인 실내악이며 모짜르트
곡과 더불어 분야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노년으로 접어든 작곡가의 창작의 정점인 곡은 특히 고뇌와 동경이

교차되는 2악장 아다지오가 인상적이며 중간부의 클라리넷의 독주는 늦가을

밤의 외로움에 흐느낌으로 다가온다.

 

Karl Leister/Clarinet & Amadeus String Quartet의 연주로 듣는다.

 

 

바하: 마태수난곡(St. Matther Passion)

1829 3 11일 베를린. 20세의 청년 멘델스존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대작 <마태 수난곡>을 무대에 올렸다. 바흐의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채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해묵은 악보가 다시금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바로크 음악 모든 종류의 형식을 총망라한 대작

전곡 연주 시간만도 3시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대작이니만큼 오늘날에도 이 작품은 결코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이 하나의 작품 속에 르네상스 마드리갈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다성 합창이 있는가 하면 단순하고 화성적인 코랄이 있고, 화려한 오페라 아리아 못지않은 서정적인 아리아들이 있는가 하면 섬세한 레치타티보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음악학자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가리켜 “바로크 종교 성악곡과 세속 성악곡을 통틀어 모든 종류의 음악 형식을 다룬 만화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을 기초로 작곡된 수난곡이다. 바흐는 이 방대한 <마태 수난곡>의 텍스트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1부를 예수 수난의 예언으로부터 시작해 예수의 체포로 끝맺는다.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예수를 팔아 넘기려는 배반자 유다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와 그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 장면,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고통스러운 기도는 모두 1부에 속한다. 서정적인 음악으로 표현된 제1부는 마치 제2부에서 펼쳐질 폭풍의 전야와도 같이 고요하고 엄숙하다.

반면에 제2부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2부가 시작되자마자 체포된 예수를 염려하며 찾아 헤매는 시온의 딸들의 슬픈 합창이 들려온다. 곧 재판이 시작되고 예수를 증오하는 유태인 군중 합창이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를 몰고 온다. 한편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슬픔은 가슴을 저미는 듯한 바이올린의 흐느낌이 되어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준다. 배반자 유다의 비극적인 최후, 그리고 빌라도 앞에 선 예수의 평화로운 침묵과 빌라도의 우유부단함, 고통스러운 골고타 언덕과 십자가. 그 모든 것은 그대로 생생한 인간 드라마가 되어 우리에게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복음사가의 풍부한 레치타티보, 웅장한 합창의 충격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곡을 통해 가장 활약이 돋보이는 인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장엄한 합창과 아리아들 사이사이에 나타나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담담하게 노래하는 ‘복음사가(Evangelist)’이다. 그는 말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를 통해, 때로는 초연하게 때로는 극적으로 복음서 내용을 읊조린다. 레치타티보는 대부분 복음사가가 노래하지만 바흐는 특히 예수가 등장하는 부분에 현악기의 반주를 곁들여 좀 더 풍부하고 장엄하게 처리했다.

<마태 수난곡>의 백미는 역시 웅장한 합창이다. 1부의 첫 도입 합창으로부터 제2부의 마지막 합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합창들이 계속되면서 예수 수난의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준다. 바흐는 각 장면에 따라 다양한 양식의 합창을 선보이는데 그 효과는 매우 놀랍다.

 감정을 전하는 코랄, 유려하게 흐르는 아리아

 

<마태 수난곡>에는 이러한 다성적인 양식의 합창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교회 성가와 같이 부드럽고 화성적인 코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복잡한 다성 합창과 단순한 레치타티보를 유연하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주는 또 하나의 기쁨은 유려하고 표정이 풍부한 다양한 아리아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슬픔이 가득 배어 나오는 제48(40) 알토를 위한 아리아는 인상적인 바이올린 독주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명곡이다. 또한 플루트의 활약이 돋보이는 제58(49) <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프라노 아리아로 꼽힌다. 이러한 아리아들 역시 화성적인 코랄과 마찬가지로, 웅장한 합창과 조용한 레치타티보 사이에 끼어들어 달콤한 선율미를 통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오늘은 1부에서 제1곡 합창에서 제10곡 아리아까지만 들었습니다.

Karl Richter가 지휘하는 뮌헨 바하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연주로 듣는다.

 

이렇게 음악감상을 마치고 잠깐 하나님 말씀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갈라디아서 2 16-21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모두 좋은 말씀이지만 특히 20절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보다 더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다같이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 바하를 중심으로 음악을 듣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운 김동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