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제법 싸늘하게 느껴지는 저녁나절입니다. 그 동안 길고 화려했던 여름이 이제는 정말로 끝나가는 느낌입니다. 오후 5시만 넘어도 어둑어둑해지는 가을 저녁 그리고 긴 밤엔 책과 음악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는 계절이라서 오히려 좋습니다. 여하튼 가을 나무들의 마지막 잎새들이 떨어지기 전에 단풍을 보내기 위한 짧은 여행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오신 가운데 경건하고 장중한 교향곡 작곡가 브르크너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이날 끝으로 들은 곡은 브루크너의 사실상 하나 밖에 없는 실내악 현악오중주였습니다.
다음은 이날 들은 곡들의 내역입니다.
브루크너 교향곡 3번
일면 바그너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1877년 12월 16일,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진 교향곡 3번의 초연 현장은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 있던 청중은 하나 둘씩 연주회장을 빠져나갔고 연주가 다 끝날 무렵에 객석에는 고작 20여 명의 청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 끝까지 자리를 지킨 청중 가운데는 후에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로 성장할 구스타프 말러도 끼어 있었다. 당시 17세였던 말러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크게 감명을 받아 이 곡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이듬해인 1878년에 출판했다. 브루크너는 말러의 편곡에 아주 만족하여 그 답례로 말러에게 자신의 교향곡 3번의 총보를 선물했고, 이후 그들은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 서로를 열렬히 숭배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의 초연 실패는 이 작품의 음악적인 면 때문이라기보다는 당대 빈 음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분쟁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당대 빈 음악계는 브람스와 한슬리크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음악가들과 바그너, 리스트로 대표되는 진보주의 음악가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바그너에게 헌정한다고 공언한 교향곡을 작곡가가 초연했으니 당연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교향곡 3번의 초연 실패 후 브루크너는 개정 작업을 통해 바그너 음악을 연상시키는 인용 부분을 삭제해 곡을 짧게 줄였고 음악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었다. 따라서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의 악보는 1873년의 오리지널 버전 외에 몇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연이 있지만 오늘날 이 교향곡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음악계의 분쟁이 어쨌든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의 3번 교향곡을 감상하자
Eugen Jochum이 지휘하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듣자.
1악장: 1악장 도입부는 인상적인 트럼펫 주제로 시작한다. 바그너는 교향곡 3번 도입부의 트럼펫 주제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2악장: 2악장 아다지오는 1악장과는 대조적으로 여린 다이내믹의 스트링 사운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명상적인 음악이다. 군데군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엔그린>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나타난다.
3악장: 3악장 스케르초는 메인 섹션과 트리오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지만 두 부분의 대비는 그다지 크지 않다. 트리오에서 도약하는 선율의 제스처는 오스트리아 민속 춤곡인 렌틀러와 요들을 닮았다.
4악장: 4악장 피날레는 8분음표의 빠른 음형의 반복으로 인해 긴박감을 주는 음악이다. 바그너 풍의 느낌이 두드러지고 휴지부가 많아서 브루크너 음악 중에서도 가장 모자이크 같은 작품이기도 한다.
브루크너: String Quintet in F major
교회음악가와 교향곡 작곡가로만 알려져 있는 브루크너의 흔치 않은 실내악 작품이다.
이 현악5중주는 규모에 있어서나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나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에 버금가는 대작이다. 초기 교향곡들의 잇따른 실패 이후 브루크너는 이 현악5중주를 작곡하면서 새로운 후기 교향곡들에 대한 많은 착상을 이 현악5중주에 군데군데 심어놓았다.
이 곡은 흔히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들과 비교될 정도로 19세기 후반 실내악의 걸작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는데
통상적인 실내악의 개념을 초월한 관현악적인 울림으로 인해 브루크너의 교향곡 양식을 현악5중주 편성으로 옮긴 것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실내악처럼 밝고 명랑한 느낌도 없고 살롱 풍의 아기자기한 느낌도 없다. 브루크너 교향곡 특유의 웅장함이 네 개의 악장 전체를 관통하고 있을 따름이다.
Amadeus Quartet 와 Cecil Aronowitz의 2nd Viola 연주로 듣자.
헤어지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
| 5.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
| 6. |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
--
| -- 11. |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153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
많은 사람들이 왜 153마리인가 그 뜻이 무엇인가 궁금해합니다. 다음과 같이 한 번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153의 뜻
-한국적 해석: 1+5+3=9 갑오: 재수 좋은 숫자
-수학적 해석: 153은 Triple Cube Number 즉 1의 3제곱(1) + 5의 3제곱(125) + 3의 3제곱(27) = 153 이렇게 귀한 수이니 그 안에 우리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Gematria(히브리어와 헬라어 철자가 갖고 있는 數値)적 해석: 헬라어로 베드로(76) + 물고기(77)=153. 그리고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아들들(베니 하 + 엘로힘)의 수치가 153이다
-153= 1+2+3+4------------+17이며 17은 10+7로 이루어진 수이다. 17이란 숫자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즉 10은 당시 이방인이 사용하던 10진법에서 완전한 수이고 7은 유대의 종교적으로 완전한 수다. 따라서 153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모두 망라하는 숫자로 교회를 상징한다.
-성서학자 오리겐의 의견: 예수님 당시 알려진 물고기의 종류가 153가지. 따라서 이 그물은 담아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교회이며 물고기는 모든 인류를 상징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숫자의 의미에 매여 있지 말고 말씀의 큰 뜻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그물을 던지지 말고 기도하고 예수께서 던지라는 방향으로 던지면 고기를 잡을 것이며 예수께서 주는 고기는 세상의 고기와 다른 큰 고기이며 아무리 큰 고기가 아무리 많이 잡혀도 그 그물이 찢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의 그물은 우리 믿음이라 생각해도 좋고 아니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라 생각해도 좋습니다. 따라서 교회내에서의 분열 교회밖에서의 분열은 모두가 예수께서 좋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바그너의 음악을 중심으로 듣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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