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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며, 자화상(自畵像)|

석운 2017. 9. 8. 10:35

여행을 떠납니다. 해마다 한 번은 내 조국 한국의 품에 안기고 나야 해를 보낼 수 있어 이번에도 아내와 더불어 여행을 떠납니다. 조국이란 참으로 편안한 곳입니다. 세월호로 메르스로 남북도발로 만신창이 되어 있어도 내 조국이 항시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내 조국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옛 수필가가 이야기했던 내 어머니가 문둥병자라 하더라도 나는 어머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은 조국을 찾을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조국을 찾는 내 발길은 항시 가벼웠고 그곳에서 나를 반겨줄 친척들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었지만 이번엔 무언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니 아니 그냥 떠나. 갔다 오면 모두 잘 돼 있을 거야,’라고 혼자 마음 속으로 몇 번씩 다독거리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자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더불어 시() 한 편 같이 보고 떠나려 합니다. 청년 시절, 아니 지금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시입니다.


                    
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2년 전 10월 어느 날, 그때도 한국여행에서 돌아온 제가 허허로운 가슴을 쓰다듬고 있다 만났던 오문회(오클랜드 문학회)는 제게 시인 윤동주가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곳에서 만난 우물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나는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이 낯선 땅 문화의 불모지에서 만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찾았습니다. 달과 구름과 하늘, 그리고 숨을 맑게 쉴 수 있도록 해주는 파아란 바람 냄새도 맡았습니다. 나는 너무도 기뻤고 시간 날 때마다 이 우물을 찾았습니다. 또한 이 우물을 그전부터 사랑하고 있던 여러분들과의 만남은 신선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물 속을 들여다 보고 있던 저는 그 속에 비친 제 모습이 추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의 마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엔 그 사내가 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점점 침침해지는 제 눈의 착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우물에 비친 그 사내는 제가 틀림없었고 저는 그 사내의 모습이 보기 싫었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 우물을 다시 찾는 것이 싫었습니다. 두렵기도 했습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존재여서 제 모습이 추하면 자기 모습을 다시 추스를 생각을 하기보다는 우물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우물을 멀리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도 사랑했던 우물을 그렇게 쉽게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우물을 찾고 싶습니다. 설레는 마음, 기쁜 마음으로 다시 옛과 같은 우물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 속에서 그렇게 그 우물을 사랑했던 추하지 않은 사내의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마치 우물을 다시 찾는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연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라고 읊을 수 있었듯이 여행에서 돌아온 제가 다시 사랑하는 우물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우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시렵니까? 지나간 일들은 모두 우물 밖 세상으로 던져놓고 우물로 돌아오셔서 아름다운 글의 두레박을 우물로 내리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귀한 이 우물은 끊임없는 시심(視心)과 영감(靈感), 그리고 사람사는 정(情)을 우리에게 공급해 줄 것입니다. 그때 우물에 비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은 파아란 바람이 부는 가을처럼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를 우물가에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2015 9월 여행을 떠나면서 석운 김동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