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음악회

제224회 화요음악회도 잘 열렸습니다

석운 2018. 6. 5. 19:21

안녕하십니까? 비가 많이 내린 주말이었습니다. 본격적인 겨울날씨가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길어지는 겨울 밤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화요음악회에서 감상한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음악을 소개해 드립니다.


SCHUBERT

현악 5중주 C 장조 D956


흔히 슈베르트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이 현악오중주를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너무 좋아해서자신의 장례식 때 이 곡의 제2악장을 연주해달라고 청하였고, 바이올리니스트 조셉 선더스는 자신의 무덤 비석에 이 곡 제1악장의 제2주제를 새겨 달라고 하였다.

음악학자 호머 울리히는 이 곡을 가리켜고귀한 이념과 아름다운 선율, 다양한 분위기에 있어 이 작품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없다.”고 평했다.

1828 9월 슈베르트는 자신의 삶을 불과 49일 남겨놓고 출판업자 프로스트에게 신작 출판에 대해 편지를 쓴다. “마침내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1, 첼로 2대를 위한 오중주곡을 처음으로 썼습니다. 이 곡은 몇 주 후에 초연될 예정입니다. 이 작품에 관심이 있으시면 부디 제게 연락바랍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그 해 1119일 빈의 허름한 다락방에서 3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현악오중주는 그가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당대의 무관심으로 이 작품의 자필악보는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지금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악보는 1853년 디아벨리 출판사에서 나온 악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현악사중주(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편성에 첼로를 추가했다. 대부분의 오중주에는 비올라가 추가되지만 슈베르트는 뜻밖에도 첼로를 택했다. 왜 그가 첼로를 택했는지는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첼로는 때로는 테너가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듯 화려한 음색으로 수를 놓다가 때로는 바리톤처럼 깊은 저음의 가곡을 부르며 듣는 이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이 곡은 실내악으로서는 보기 드문 대작이어서 연주 시간이 거의 한 시간에 이른다. 그 긴 시간 동안에 슈베르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이 곡이 너무 길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현대음악의 거장 스트라빈스키에게 슈베르트의 음악은 좀 지겹지 않나요?’라고 물었을 때 스트라빈스키가, ‘무슨 말씀, 그 속에서 난 천국을 발견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러분들도 오늘 이 곡을 들으면서 천국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Melos Quartett Stuttgart Rostropovich의 제2 첼로 연주로 듣습니다.


1악장: Allegr ma non troppo

편안한 장조 화음과 뭔가 뒤틀린 단조 화음이 교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낭만적 성격을 보인다. 두 대의 첼로에 의해 연주되는 제2주제는 화창한 봄날처럼 매우 따스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나타내면서 마음의 평화를 선물하듯 아름다운 선율을 그리고 있다.



2악장: Adagio

첼로의 피차카토가 어우러지면서 깊고 풍부한 선율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 애처롭기만 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슬픔과 격정을 폭발시킨 후 극도의 여린 음으로 마무리하면서 감정의 기복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3악장: Scherzo. Presto-Trio. Andante sostenuto

시골 풍의 춤곡으로 시작하지만 곧 템포가 느려지면서 다시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선율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교향악적인 활력에 넘친다.

4악장: Finale. Allegretto

헝가리풍의 무곡적인 주제로 시작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매우 빠른 템포로 감정이 격앙되면서 밤하늘의 불꽃처럼 화려하면서도 압도적인 결말로 막을 내린다.


브람스

교향곡 3번 F장조 op. 90



이 곡은 그 구성과 표현이 비교적 간결하고 각 악장의 주제 선율들이 뚜렷하며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 그 스스로 작은 교향곡이라 불렀다. 초연을 지휘한 한스 리히터는 이 작품을 브람스의 교향곡 `에로이카'(베토멘의 3번 교향곡 영웅-에로이카-에 비유한 것)라고 칭하였는데, 다른 작품에 비해 극히 남성적인 이 곡의 특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 곡은 베토벤처럼 초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영웅이 아닌 강한 의지의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영웅을 그리고 있어 서정적이고 고고하기만 하다. 이 곡은 각 악장마다 선율을 서정적으로 신선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있어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교향곡 제3번은 1883년 비스바덴으로 여름휴가를 갔을 때 작곡을 시작한 후 그해 10월 빈에 돌아와 완성하게 된다. 당시 50세에 접어든 브람스가 예년과 같이 피서지가 아닌 비스바덴에 머물게 된 것은 젊고 매력적이면서 지적인 알토가수 헬미네 쉬퍼스 때문이었다. 그녀는 독일 가곡, 특히 브람스 가곡에 대해 깊은 공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브람스의 인품을 알게 되면서 한층 더 깊은 애정으로 그의 가곡을 접하게 된다.


브람스는 그녀와 행복에 젖은 나날을 보냈고, 그녀에 대한 사랑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교향곡을 쓰도록 자극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 작품은 4개월 만에 완성하게 된다. 브람스는 비스바덴의 고요한 숲 속에서 산책을 하면서 악상을 떠올리며 이 작품에 사랑의 열정적인 기쁨과 동경의 꿈을 빚어 넣었다.

`Goodbye again'이란 영화는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다. 주인공 필립(앤소니 퍼킨스)은 바람둥이 애인 로제(이브 몽땅)가 있는 15살 연상의 여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를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며 첫 데이트를 청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연상의 여인에 대한 사랑'이다. 마치 브람스가 클라라를 사랑한 것처럼……교향곡 제3번의 제3악장은 비가 내리는 초가을의 파리가 무대인 이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와 영화 속 그 장면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오늘 비록 mono 녹음이지만 훌륭한 연주로 정평이 있는 Furtwangler가 지휘하는 Berliner Philharmoniker의 연주로 듣습니다







1악장: Allegro con brio 서주는 관악기에 의한 강렬한 상승화음으로 시작하면서 현악기가 뒤따르게 된다. 뒤로 갈수록 고조되면서 거대하고 진한 유화를 그리듯 클라이맥스에서는 강렬하고 정열적인 선율이 `영웅'적 주제로 느껴진다. 14살 연상의 클라라를 향한 사랑의 감정과는 또 다르게 격정적으로 쉬퍼스에 대한 그의 감정을 표현하는 듯하다.

2악장: Andante 목가적 서정과 고독이 묻어나는 악장이다. 격정적이었던 브람스 자신의 마음을 쓸어내려 하지만 감정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서정적인 선율이 클라리넷과 바순에 의해 표현되고 이를 현악으로 브람스 특유의 낭만적인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3악장: Poco Allegretto 첼로의 선율이 가을처럼 우수에 차면서 감미롭고 서정적으로 흘러나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며 낭만의 극치를 이룬다. 이어 바이올린과 목관에 의해 그 감정은 더욱 골이 깊어진다. 브람스는 이 곡과 함께 클라라에게 보낸 헌사에서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고, 나는 당신에게 천만 번의 인사를 보냅니다.”라고 적고 있다.


4악장: Allegro 더욱 강렬하고 열정적으로 서주가 시작되지만 곧 폭풍우 뒤 맑게 게인 가을하늘의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을 되찾는다. 이젠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 격렬했던 주제는 먼 추억처럼 어렴풋이 간간히 들리면서 고요하게 사라지고 곱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듯 조용히 막을 내린다.

끝으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빌립보서 25 -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자기를 비우는 것을 케노시스(Kenosis)라고 합니다. 이 자기 비움이 있기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 우리를 대신해서 돌아가실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얼만큼 케노시스 자기 비움-를 할 수 있는지, 아니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역시 브람스와 슈베르트를 듣겠습니다.



정이정(淨耳亭) 청지기 석운 김동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