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 257회 화요음악회에서는 먼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듣기로 했습니다. 지난 5월 제가 비엔나에서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 하우스에 갔다가 6번 교향곡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깨달았기에 회원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베토벤의 교향곡 6번을 듣기 전에 요즈음 제가 뉴질랜드 타임즈에 연재하고 있는동유럽 여행기 중 비엔나에서 들렸던 베토벤 하우스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다.
----다음이 여행기의 일부입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 기념관
기념관에 전시된 자료들 중에서 먼저 베토벤의 데드마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평온히 잠든 그의 얼굴에서 험난했던 인생 역정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 옆에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가 있었다.
데쓰 마스크
유서
유서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육필 유서 앞에서 나는 엄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서를 쓰고 곧 죽었더라면 그는 보통의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 그가 그의 유서 말미에 “죽음이여, 언제든 오라. 나는 당당히 네 앞으로 가 너를 맞으리라,”고 썼듯이 그는 당당하게 죽음과 맞섰고 이겨냈다. 그리고 그 뒤 살아있는 25년동안 음악사상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기에 악성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베토벤의 보청기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피아노 위에 놓인 뿔 피리 같이 생긴 이상한 금속물체에 눈이 갔다. 저게 뭐지 하는 다음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베토벤의 보청기였다. 말년에 청력을 거의 상실한 베토벤은 이 보청기에 의지하여 사력을 다하여 작곡에 임하였다. 처음에는 작게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나팔만큼 크게 만들었다고 했다. 바로 그 나팔만큼 큰 보청기가 내 눈 앞에 있었다. 아니 그 순간 내 눈 앞에는 베토벤도 있었다. 한 손으로는 커다란 보청기를 귀에 갖다 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며 필사적으로 음을 들으려 하며 오선지를 채우고 있었다.
베토벤의 보청기
‘그렇군요. 당신께서는 그렇게 어렵게 25년동안 작곡을 하셨군요. 우리가 평안하게 들으며 울고 웃는 당신의 곡들이 이렇게 태어났군요,’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독백을 했다. 그랬다. 베토벤은 유서를 쓴 뒤 오히려 절망의 순간을 딛고 일어섰다. 남들이 다 듣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신(神)이 그에게만 허락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에 그는 주옥 같은 걸작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이상하게 생긴 보청기를 통해서 그는 신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불현듯 일어나서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을 산책하면서 오히려 신에게 감사하며 작곡을 했을 것이다.
교향곡 6번, 전원(田園)
그때 그가 작곡한 곡이 교향곡 6번 전원이다. 보통 4악장으로 되어 있는 다른 교향곡과 달리 이 교향곡은 5악장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악장마다 제목이 붙어있는데 마지막 5악장의 제목이 ‘목동들의 노래 - 폭풍우 뒤의 행복한 감사의 마음’이다. 유서를 쓰고 죽기 직전 오히려 신(神)의 은총을 깨닫고 일어서 신에게 감사하는 곡을 쓴 베토벤은 역시 큰 사람이었다. 악성(樂聖)의 칭호가 그에게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이 곡의 4악장에서는 천둥이 치고 폭우가 내린다. 마치 유서를 쓸 때의 베토벤의 심정과 같다. 그러나 4악장이 불과 3분 정도에 그치는 짧은 악장인 것처럼 베토벤은 그 역경을 빨리 떨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찾아온 평온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5악장처럼 베토벤은 평온을 회복하고 일어나서 신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곡을 썼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전원교향곡에 담긴 깊고 큰 뜻을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다. 내 머릿속에서는 5악장 도입부의 클라리넷과 호른 소리가 평화롭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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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여행 이야기를 한 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칼 뵘이 지휘하는 비엔나 관현악단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모두가 베토벤과 같이 그가 사랑하여 산책하며 악상을 가다듬던 전원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곡으로는 동영상으로 케텔비의 ‘초원을 가르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시장에서'란 작품으로 유명한 케텔비(Albert William Ketelbey 1875~1959 )는 영국의 작곡가입니다. 오늘 감상한 곡은 케텔비가 어린 시절 고향인 버밍엄 지방 애스톤 교구 교회 (Aston Parish Church)에서 울리던 종소리의 추억을 담았다는 설이 있는데 교회 종소리와 어우러지는 자연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가장 먼 곳에서부터 오시는 권선생님께서 신청하신 곡입니다. 동영상으로 감상해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gGNn96MJpY&list=RDxgGNn96MJpY&start_radio=1#t=2
마지막 곡은 정명훈이 지휘하고 조성진이 피아노 독주를 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이었습니다. 역시 동영상으로 감상했습니다. 40분 가까이 연주되는 곡을 눈으로 보며 귀로 들으며 모두가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낼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이었으며 또한 연주였습니다. 명장 정명훈이나 피아노의 천재 조성진이나 악보도 없이 암보로 지휘하고 연주하는 모습은 찬탄하다 못해 경악할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이름에 조금도 손색이 없이 모든 피아노 협주곡 위에 우뚝 선 ‘황제’ 협주곡을 만끽한 겨울 저녁이었습니다.
https://youtu.be/n7edk-zaS2Q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헤어지기 전에 하나님 말씀 보았습니다.
시편 제 123 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우리 조국의 현실이 너무도 어려운 때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보아야 할 곳은 주변 상황도 아니고 서로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직 주님뿐입니다. 시편 기자처럼 눈을 들어 주께 향할 때 이 어려운 상황이 풀릴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이정(淨耳亭) 청지기 석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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