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음악회

차이콥스키를 마지막으로 들은 제281회 화요음악회도 잘 열렸습니다

석운 2020. 8. 11. 20:45

하루 종일 비가 내린 전형적 겨울 날씨였지만 저녁 때가 되자 비가 좀 주춤해졌고 시간이 되자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다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또 음악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차이콥스키를 마지막으로 듣는 날입니다. 지난 달 7월7일부터 한 달이 넘게 겨울에 듣는 음악가 차이콥스키를 들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오늘로서 차이콥스키를 일단락 짓자고 결정했었고 그래서 들은 첫 곡은 그의 현악6중주 플로렌스의 추억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 현악6중주 ‘플로렌스의 추억(Souvenir de Florence)’

 

이탈리아어로는 피렌체(Firenze)라고 하는 플로렌스(Florence)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주도(州都)로 아르노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중세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피렌체’라는 말 자체에 ‘꽃피는 마을’이라는 뜻이 들어있으니 이곳에서 문화의 꽃이 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에 일찍이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을 쓴 단테(Alighieri Dante, 1265 ~ 1321)는 이 도시를 흐르는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다리 위에서 그의 영원한 사랑 베아뜨리체(Beatrice)를 만나 첫눈에 반했을 것입니다. 폰테 베키오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인데 단테 때부터 놓여져 있던 나무 다리를 석조로 만든 것이 지금도 건재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음악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지만 말이 나온 김에 잠깐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단테(Alighieri Dante, 1265 ~ 1321)가 그의 영원한 사랑 베아뜨리체(Beatrice)를 보고 첫눈에 반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9살이었습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축제에 따라나갔다가 8살 소녀 베아트리체를 보고 정신을 빼앗겼는데 만남의 순간은 지극히 짧았습니다. 1274년의 어느 날이 그에게는 운명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네'라고 노래하며 그녀를 평생 찬미하게 되었는데 그 뒤 9년 후 어느 봄날에도 그녀 생각을 하며 산타트리니타 난간에 기대서 있었는데 마침 폰테 베키오를 지나 걸어오는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이런 단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지나쳤고 단테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그녀가 사라진 뒤에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뒤 2년이 지난 후 그는 다른 여인과 결혼했고 또 베아트리체는 그 2년 뒤 1287년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었고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뒤 단테는 글쓰기에 열중하였는데 불과 3년 뒤 베아트리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단테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은 영원히 천상으로 가버렸고 그의 가슴 속에선 더욱 강렬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며 그의 작품 속에서 승화되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목전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요즘의 사랑과는 너무도 격이 다른 사랑이기에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남아 심금을 울립니다.

 

이렇게 유서 깊은 사연이 구석구석 숨어있고 또 그 풍광도 아름다운 곳이기에 차이코프스키는 1890년 여기서 얼마간 머무르는 동안 이 도시가 풍기는 문화적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고아하며 매력적인 도시 플로렌스로부터 받은 예술적 영감을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의 선율에 고스란히 담아 만든 곡이 그의 현악 6중주곡 ‘플로렌스의 추억’입니다.

 

현악 6중주곡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각각 두 대씩 편성되는 독특한 악기 구성이기에 작품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차이콥스키의 곡 이외의 현악 6중주 작품으로는 브람스(Brahms)의 곡이 유명한 정도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는 동안 차이콥스키가 동생 모데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흔한 방식으로 작곡하는 게 싫어서 6개의 소리로 시도하고 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든다"고 토로한 것을 보면 작곡에 애로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고생은 헛되지 않아 이와 같이 아름다운 곡이 탄생했습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6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어 이렇게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는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덧 ‘플로렌스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인한 선입감을 벗어나 남유럽만이 아닌 러시아와 동양의 정서를 아울러 느낄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빠른 템포와 화려한 선율 속에 차이콥스키 특유의 고독, 그리고 고국에 대한 사무칠 만큼 깊은 그리움이 넘쳐납니다.

 

모두 4악장 구성입니다. 낭만적이면서도 쓸쓸함을 느끼는 1악장, 사랑이 가득하다 넘쳐나 눈물까지 나오게 하는 2악장, 러시아의 민속적 리듬이 튀어나오는 3악장, 빠르고 활기차게 기쁨을 실어오는 마지막 4악장입니다.

 

몸은 플로렌스에 있었지만 마음은 러시아를 향해 있었던 차이콥스키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꽃의 도시 피렌체 혹은 플로렌스의 정경이 눈에 아스라히 떠오르도록 만드는 풍성한 현(絃)의 향연입니다.

 

이 곡을 가장 잘 연주한 연주자는 역시 러시아를 대표하는 현악사중주단 Borodin Quartet입니다. 이들은 이 곡을 좋아하여 1965년, 1979년, 1993년 3번에 걸쳐 녹음하였는데 모두가 명연주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는 가장 오래된 1965년의 연주입니다. 그 이유는 이 연주에는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Rostropovich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차대전 직후 잠깐 이 보로딘 사중주단에 참가했던 그가 20년이 지난 1965년에 다시 돌아와 그들과 더불어 젊은 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연주하는 ‘플로렌스의 추억’은 그야말로 절창입니다. 같이 감상하시겠습니다.

 

 

첫 곡을 듣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진 뒤에 회원 중 한 분이 같이 감상하고 싶다고 하셔서 유튜브에 나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을 들었습니다.

 

https://youtu.be/RZOg1PmLYQk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

 

아주 아름답고 감미로운 곡이었습니다.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소년 모차르트의 순수하고 고운 마음결을 전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오늘의 하이라이트이며 차이콥스키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인 비창 교향곡을 들엇습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悲愴)’

 

오늘 우리가 들을 비창 교향곡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더불어 세계 3대 교향곡의 하나로 꼽히는 교향곡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면서 차이콥스키는 주변 사람에게 ‘나의 일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갖고 작곡한 이 곡은 결국 그의 최대의 걸작이 되었고 이 곡을 듣는 이는 누구나 고금의 교향곡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니 세계 3대 교향곡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결코 이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들었던 그의 4번 교향곡(1877년)과 5번 교향곡(1888년)으로 차이콥스키의 이름은 유럽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작곡에 정진하였습니다. ‘나는 내 창작의 최후를 장식할 웅대한 교향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쓴 1889년 10월의 그의 편지에서 이 6번 교향곡을 향한 그의 결심과 포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890년에 차이콥스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는 사건이 생깁니다. 15년 동안이나 그에게 후원금을 주며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을 해주던 폰 메크 부인이 더 이상 후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부인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차이콥스키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후원금도 문제였지만 더 큰 것은 그때까지 부인에게 의지해왔던 정신적 지지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큰 절망에 빠졌던 차이콥스키는 다시 절망을 떨치고 작곡에 매진하여 써낸 작품이 교향곡 6번입니다.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작곡했기에 곡은 어렵지 않게 완성되었고 초연은 1893년 10월 28일 페트르부르크에서 차이콥스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는데 기대와는 달리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이에 차이콥스키는 작품이 청중들에게 보다 잘 전달되게 하기 위하여 작품에 표제를 넣을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때 동생 모데스트가 비창(Pathéthique)이라는 이름을 권했고 차이콥스키가 이를 받아들여 그 때부터 이 교향곡의 이름이 비창이 된 것입니다. 프랑스 어인 Pathéthique는 슬픔이란 뜻인데 공교롭게도 이 교향곡 Pathéthique의 초연 후 차이콥스키가 9일 후에 갑작스레 죽었으니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초연 9일 후의 차이콥스키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가 죽은 원인은 콜레라라고 그의 전기에 쓰여져 있습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콜레라가 만연되어 있었고 그가 끓이지 않은 물을 잘못 마셔 콜레라에 걸린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급작스런 죽음이었기에 자살설이 파다하였고 후대의 연구가들도 그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떠났고 그렇게 차이콥스키가 죽고 나서 <비창>이 다시 연주되었을 때엔 그의 죽음 때문인지 연주회장이 울음 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연주가 거듭될수록 이 곡의 가치는 더욱 들어났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작곡한 것 같은 이 곡에는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울과 고독 그리고 희열과 절망이 교차하는 그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곡의 구성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지만 이 곡은 보통의 교향곡과 다른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보통 교향곡은 2악장이 조용하고 느리고 마지막 4악장이 웅장하며 빠릅니다. 그러나 이 곡은 오히려 2악장이 빠르고 4악장이 조용하고 음울하며 3악장은 끝 부분이 마치 곡이 끝나는 느낌을 줍니다.

 

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으로 시작되는 침울한 멜로디에 이어서 파곳의 탄식하는 듯한 선율이 이어집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슬프며 쓸쓸한 느낌의 악장입니다

 

2악장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

 

빠르고 경쾌하지만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선율이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줍니다.

 

3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타란텔라 주제(이탈리아 남부지방의 민속 무도)’라고 불리는 3악장의 주제는 활발하고 장난스럽지만 어딘가 비통한 느낌이 있습니다.

 

4악장 피날레: 아다지오 라멘토소 – 안단테

 

차이콥스키 스스로가 새로운 시도라고 했듯 보통의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달리 가장 느리고 어둡고 무거운 악장으로 비통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로운 독백과 같은 이 악장은 비장한 여운을 남기며 서서히 끝이 납니다.

 

명곡인 만큼 좋은 연주가 많습니다.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관현악단의 연주도 압권이고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를린 관현악단의 연주도 좋지만 비록 낡았어도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관현악단의 연주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호방하면서도 세밀한 오케스트라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가 탄생시킨 명연주입니다.

 

 

음악 감상을 마친 뒤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고린도 후서 1장 3-4절입니다(2 Corinthians 1: 3-4)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3. Praise God,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is a merciful God, who always gives us comfort.
4. He comforts us when we are in trouble, so that we can share that same comfort with others in trouble.

 

살아가면서 지난 날의 아름다운 추억에 잠겨도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고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도 없습니다. 또 우리의 삶의 도처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들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도 또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위로로도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가 되고 또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또한 그분이 주시는 위로뿐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손을 내밀어 하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로 그 동안 계속 들어왔던 차이콥스키를 일단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다른 음악가가 여러분을 맞아주실 것입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이정(淨耳亭) 청지기 석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