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매일같이 아름다운 여름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저녁에 여러분과 같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지난 주에 Haydn의 곡을 들으며 고전주의 음악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 3명은 하이든, 모짜르트, 그리고 베토벤입니다. 이 세분의 음악을 들으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몇 차례에 걸쳐 세분의 곡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Haydn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
약 50년 전만 해도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은 지난 주에 들은 2번 협주곡이 유일한 곡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작곡한 첼로 협주곡이 최소한 5곡 이상 될 것이라고 학자들이 추정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진위(眞僞)를 가릴 수 없기에 모두가 그의 것으로 인정한 2번만이 연주되었기 때문입니다.
1961년에 프라하 국립박물관에서 하이든 시대의 필사보(筆寫譜)가 나오므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이 하나 더 햇빛을 보았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1번 C장조 협주곡입니다. 200년만에 밖으로 나온 이 곡은 1962년 체코의 음악제 ‘프라하의 봄’을 통해서였습니다. 체코의 거장 첼리스트 밀로스 사들로(Milos Sadlo)의 연주를 거쳐 그 아름다운 소리를 세상에 알린 후 유명해졌습니다. 2번 D장조와 우열을 가리긴 힘들지만 하이든 초기시절을 잘 알려주는 곡입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들이 이 곡을 즐겨 연주했고 특히 야노스 스타커(janos Starker)는 이 곡을 사랑해서 사람들에게 그 참 맛을 알려줬습니다.
독주부가 기교를 요구해서 연주가 쉽지 않습니다. 모두 3악장으로 되어 있고 특히 서정적인 아리아를 부르는 것 같은 2악장 아다지오는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습니다.

오늘 Mischa Maisky의 첼로와 그가 지휘하는 Chamber orchestra of Europe의 연주로 듣습니다.
Mozart Sinfonia Concertante K364
Sinfonia Concertante는 번역하면 협주적 교향곡 또는 교향적 협주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협주곡과 교향곡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던 바로크 시대에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이란 형식이 있었습니다. 두 대 이상의 독주 악기 그룹이 관현악과 이야기를 나누듯 주고받으며 협주하는 형식이 합주협주곡인데 모차르트가 이를 발전시켜 Sinfonia Concertante의 형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오늘 들을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곡과 ‘네 대의 관악기를 위한 곡’도 썼는데 이 형식은 잠깐 나왔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들을 곡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걸작 중의 하나입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독주악기로 택한 것부터 모차르트의 독창성이 보이며 특히 고전시대에 비올리스트가 협연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었으며 2악장에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엮어내는 우수에 찬 애절한 이중주는 절창입니다. 훗날 이 곡을 연주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가 2악장을 가리켜 ‘가슴에 사무치는 악장’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한 곡인 만큼 좋은 연주가 많지만 오늘 우리는 아름답고 훈훈한 연주로 듣습니다. 독주 악기를 맡은 David Oistrakh 와 Igor Oistrakh는 부자지간입니다. David는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최고의 연주자일 뿐 아니라 지휘자이며 교수였던 그는 또한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랬기에 이 곡을 연주하며 그는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넘겨주고 자기는 비올라를 잡았습니다.
이들 부자가 연주하는 이 곡을 듣노라면 아들의 뒤에서 보살펴 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버지보다 훌쩍 커버렸어도 아버지 눈에 비치는 아들은 항시 어린이일 따름입니다. Kiril Kondrashin이 지휘하는 Moscow Philharmonic의 협연도 이들 부자의 연주와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교향적 협주곡이기에 4악장이 아닌 3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중 어느 맑게 개인 날
마지막 곡을 듣기 전에 잠깐 동영상 하나 보겠습니다.
https://youtu.be/Cmi4CronVaA 나비부인 어느 맑게 개인 날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 중 아리아 ‘어느 맑게 개인 날’입니다 소프라노 Mirella Freni의 열창입니다. 방금 전 들었던 모차르트의 2악장과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가사 중에서 ‘저 멀리 지평선으로부터 한 줄기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a wisp of smoke rising from the distant horizon of the sea)’이라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을 가지기에 끝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기에 같이 보시고 마지막 곡 듣겠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46(1 King 18: 42-46)입니다
42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there arises a little cloud out of the sea, like a man’s hand).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직도 코로나로 어려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며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Beethoven Symphony No. 5 in C minor, op.67 'Fate' 운명 교향곡
교향곡의 대명사라고 할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은 모든 교향곡 중 최고의 걸작이며 모두에게 사랑 받고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입니다. ‘빠빠빠 빰'하고 네 음으로 시작되는 1악장의 동기를 베토벤이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고 했다고 그의 비서 안톤 쉰들러가 기록했기에 ‘운명’이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이렇게 운명의 문을 연 이 곡은 청력상실이라는 역경을 오히려 창작을 통해 이겨내는 베토벤의 위대한 삶을 투영하며 마지막 4악장에서 승리의 찬가로 마무리됩니다.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인 슈만이 이 곡을 ‘아무리 들어도 마치 자연의 현상처럼 외경과 경탄이 새로워진다’고 말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평가입니다.
‘암흑에서 광명으로’라는 베토벤의 평생의 신조가 가장 극명하게 감동적으로 들어난 곡이 바로 이 운명교향곡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곡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지휘자들이 이 곡에 도전했고 훌륭한 지휘자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곡을 가장 잘 연주해낸 뛰어난 부자(父子) 지휘자가 있습니다.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 1890-1956)와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1930-2004)
베를린 악단의 음악장을 지낸 독일 음악계의 거장인 에리히 클라이버는 히틀러의 나치에 반대해 아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5살 되던 해 아르헨티나로 망명했습니다. 아들의 이름도 독일 이름 칼을 스페인 이름 카를로스로 바꿔주었습니다. 그리고 음악공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힘든 예술가의 삶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아버지 몰래 음악 공부를 했고 뒤셀도르프, 취리히 등지에서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쌓아 가다 1974년에는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카라얀과 비교됩니다. 카라얀은 철저한 출세주의자로서 현실과 타협하며 레코딩과 상업성을 띈 연주회로 부와 명성을 잡았습니다. 반면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명성을 획득한 뒤에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고 언제든지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연주하고 레코딩을 싫어했고 오로지 라이브만 고집했습니다.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가 ‘나는 아스파라거스가 먹고 싶으면 신선한 것을 찾고, 없으면 통조림을 먹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 같이 아들도 ‘레코드는 통조림 음악’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모두 돈과 지위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대신 완벽주의자여서 다른 지휘자보다 몇 배의 연습과 리허설을 고집했기에 단원들과 마찰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연 당일에 연주를 취소하고 사라져버리는 괴벽도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두 발이 땅을 딛고 있다는 현실을 무시했기에 비난과 칭송이 언제나 함께 따랐습니다.
이 부자가 모두 베토벤 5번의 최고의 명연주를 남겼고 다행히 그 녹음은 레코드로 남아있습니다. 두 사람의 지휘가 모두 명료한 리듬감과 강렬한 색채감, 그리고 질주하는 속도감이 있기에 특히 이 5번 운명 교향곡과 맞아 떨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사람의 연주의 우열을 우리가 논하기가 어렵지만 오늘 우리는 아들 클라이버의 연주로 듣습니다. 1974년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연주입니다.
다음주에도 이 세 음악가의 작품을 감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이정(淨耳亭) 청지기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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